日常의斷想2010.06.01 13:17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운동장이 무척 넓었다.
쉬는 시간이면 제일 좋아하는 정글숲 놀이를 즐겼는데 이게 교실과는 정반대의 구석쪽에 있는지라 몇 번 타지도 못하고 뛰어 갔다 뛰어 오면 금새 쉬는 시간이 끝나고는 했다.
그런 아쉬움이 있어서일까, 노는 시간만 되면 유난히 그 놀이만 즐겼다.

정글숲 밑에는 떨어져도 다치지 말라고 푹신한 모래밭이 있었는데 당연히 거기서도 잘 놀았다.
매일 그렇게 정글숲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모래밭에서 뒹굴며 놀다 보면 나의 옷은 당연히 흙투성이가 되고...
아침이면 깨끗한 옷을 입고 나가는데 오후만 되면 어김없이 흙투성이가 되어 돌아오니 어머님께 혼나기는 당연지사.. 
당연히 동네에서도 제일 별나게 노는 아이라고 소문이 났다.

3학년 때까지는 여자아이들과 합반으로 같이 수업을 했는데 그때 나의 짝지가 됐던 여자 애는 그런 나 때문에 엄청 고생을 했다. 옷에서는 먼지가 풀풀나고 손은 시커멓게 더럽혀져 있는 애랑 같이 옆에 앉아서 수업듣고, 점심시간에는 그 시커먼 손을 씻지도 않고 밥을 먹으니 나름 깔끔떨던 걔가 보기에 나란 놈이 얼마나 더러웠을까..

어느 날, 그 아이의 어머님이 담임 선생님을 찾아 오셨다.
용건은 내가 너무 더러워서 같이 공부를 할 수가 없으니 그 여학생의 자리를 바꿔 달라는 것이었다.
놀라서 뛰어 나오신 교장선생님과 함께 세 분이서 교실 밖에서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면서 간간이 나를 째려보던 그 아이 엄마의 눈초리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처음에 기세등등하던 그 어머님은 무슨 연유에서인지 갈수록 인상이 풀어지셨고 마침내는 웃음까지 띄며 돌아 가셨는데 돌아가실 때 나를 쳐다보는 눈은 상당히 부드럽게 풀려 있었다.

나의 짐작이지만 아마 당시에 학교 육성회장을 맡고 계셨던 나의 어머님의 막강한 치맛바람 덕을 본 것 같고, 더군다나 나는 그때 이미 공부로도 전교 1등을 다투고 있던 우수학생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학생을 선생님 입장에서는 단순 장난꾸러기 이상의 문제아로 삼고 싶지는 않으셨을 법 하다.

그 아이의 자리바꿈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나는 그 사건으로 어린 마음에 충격을 받았는지 그때부터 남성적인 놀이인 정글숲을 멀리하게 되었다. 하지만 장난꾸러기의 근성은 그대로 남아 있어서 이제는 집에가서 고자질이나 하는 괘씸한 여학생들의 놀이를 방해하고자 당시에 많이 가지고 놀던 고무줄을 끊고 다니는 재미로 바뀌었을 뿐이다.
점심시간이면 어김없이 운동장 곳곳을 헤집고 다니면서 고무줄 놀이하는 여학생들의 고무줄을 많을 때는 10개씩 끊어먹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예의 그 막강한 어머님의 후광 덕이었는지 그 많은 고자질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선생님에게 혼난 적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유치한 짓이었지만 가끔씩 어릴 때 생각을 하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곤 한다.


나의 학교 옆에는 부산진시장이라는 큰 재래시장이 있다. 지금도 그 자리에 옛날 모습으로 그대로 있다.
3학년 때인가...시장 안에 에스컬레이터라는게 생겼는데 그 움직이는 계단이 어린 눈으로 보기에도 너무나 신기했다. 
당연히 나의 공략목표가 되었고...
학교만 마치면 반 친구들과 우루루 몰려가서 우릴 잡으려는 시장 경비원 아저씨들과 숨바꼭질하면서 그걸 타며 놀곤 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어머님이 털실로 짜 주신 바지를 입고 한참 에스컬레이터 놀이를 하고난 후, 집으로 돌아 가는데 이상하게도 걸으면 걸을수록 엉덩이가 허전하게 시려왔다 하지만 어린 생각에 왜 그런지는 전혀 몰랐었고 그냥 날이 오늘따라 유난히 춥다라고만 생각하며 집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너 바지 어쨌어?'
날 보자마자 어머님이 물으셨다.
그제서야 밑을 내려다 보니.. 아뿔싸....바지는 온데간데 없고 팬티만 달랑 입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딘가에 바지실이 낀 줄도 모르고 놀이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가 집까지 걸어오면서 슬슬 다 풀려 버린 것이었다. 
추운 겨울철에 팬티만 입고 동네를 싸돌아 다녔으니 미친 놈 소리를 들어도 당연..
며칠을 정성들여 손수 짜주신 털실 바지를 어디엔가 홀랑 말아먹고 팬티바람으로 집에 들어온 자식이 얼마나 기가 차셨을까...
정신나간 놈이라며 혀를 끌끌 차시던 어머님의 한심한 표정이 지금도 기억난다.


얼마 전에 용인의 천주교 묘지에 잠들어 계시는 어머님의 산소를 정비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꺼져가던 봉분을 아예 해체해서 봉분을 싸는 대리석도 새로 바꾸고 키도 올리는 공사를 한 것이다.
살아 생전 제대로 효도를 못해 드려서 내내 마음에 후회가 되곤 했는데 이제 돌아 가시고 나서야 약간의 효도를 한 것이다.
꿈에서나마 한번씩 뵈면 좋을텐데 하늘나라의 재미에 푹 빠지셨는지 도통 나타나시질 않는다.

이런 화창한 날이 되면 살아생전 어머님 모시고 그 흔한 놀이 한번 못가본 것이 후회가 된다.
물론 그런 생각은 아내 몰래 나 혼자서만 하지만...

모레쯤에는 새로 단장한 어머님 산소에나 다시 한번 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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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박한 독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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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머님 생각... 어머니 아버지한테....늘 받기만 하고.......마음만 잘해드려야지 생각하는데...조금 더 분발해야겠습니다. 좋은 글 잘 봤어요 어머님이 하늘에서 달빛처럼 따스한 눈길로 우리아들 잘 지내나~늘 바라보실 꺼예요~^^

    2010.06.03 15:2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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