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역사/종교2015.04.28 17:09



주) 본문의 독후감은 1940년대를 읽고 쓴 것이나, 최근 1960년대편 3권까지 책을 읽고 아래의 본문을 조금 수정하였습니다. (2015.04.28 17:03)




개인적으로 역사에 흥미를 느껴 틈틈이 한국고대사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책들을 이것 저것 읽고 다녔다. 그러나 통사는 만나기 힘들고 시중에 널려있는 대부분의 고대사나 중세사를 다룬 역사책들은 지엽적인 사건이나 인물, 한정된 시대를 다룬 것들이다. 아쉬운 부분이다.


간혹 단군시대부터 조선시대말까지 역사를 시대순으로 개술한 대작 역사책들도 만나게 되긴 하나, 이들 또한 별로 마음에 들지않는 강단사학자들이 쓴 자조적인(?) 축소역사물들이라 굳이 읽어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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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해방 이후의 근대사나 현대사를 다룬 책들은 어떨까?

일제에 의하여 첨삭되고 윤색된 엉터리 역사서를 읽는 것이 아니라 진짜 역사를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있던 차에, 2~3년전 쯤인가...어느 날 우연히 도서관에서 강준만의 <한국현대사산책>을 접하게 되었다. 드디어 만났구나.


그 날 당장 1권부터 빌려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몇 권 지나지 않아 나는 도서관 대출을 중지하고 이 전집의 구매를 결심했다 (실행에 옮긴 것은 얼마 전이고 내용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져 처음부터 다시 읽는 중이다).


저자가 진보적인 입장에 선 지식인 계층이다 보니 좌파니 어쩌니 하는 말도 간혹 듣는 모양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독서하면서 사상적인 냄새를 맡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팩트에 근거한 용인할 만한 수준이라고 생각하며, 오히려 책 속에 인용해 놓은 근거가 확실한 방대한 역사적 팩트들은 이 책이 학계에서야 어떻게 평가받던 두고두고 음미해 봐야 할 진짜 역사의 기록물이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세 가지만 이야기하자.


첫째, 강준만은 한국현대사산책을 집필하며 자료들의 인용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당시의 신문기사는 물론이고 후세에 다른 학자들이 쓴 연구논문이나 국내외의 책, 방송 등 잡다구리한(?) 방대한 자료들을 수집하여 차별하지 않고 자신의 책에 인용을 즐긴다. 인용에는 좌우가 없다. 있는 그대로 가능한 많이 (내가 보기에는) 옮겨 놓았다. 극우도 극좌도 다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팩트를 옮겨만 놓고 100% 독자의 판단에만 맡기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그 팩트들에 의거하여 조심스런(?) 자신만의 결론을 자주 유도한다. 이는 보기에 따라서는 독자들의 결론을 호도할 수도 있다고 생각되나 어쨌거나 본인은 좌건 우건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용하여 <통섭의 역사서를 지향>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독자의 입장에서 비록 100% 만족스럽진 않으나 저자의 이런 노력에 비교적 긍정을 표한다. 저자의 방식대로 말하자면 덕분에 <통섭적인 시각>(?)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대부분의 역사서가 그렇듯이 다른 학자들이 쓴 역사서들은 대부분 저자 개인의 시각과 해석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고대사와 중세사를 다룬 역사책들이 거의 그렇다. 그러나 강준만의 역사서는 여기저기에서 긁어모은 팩트성 자료들로 이루어진 잡동사니(?) 역사서로 비록 어쩔 수 없이 군데군데 저자의 시각이나 해석이 묻어 있다고 하더라도 위에서 말했듯이 독자의 판단을 무디게 만들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독자들에게 비교적 판단의 자유을 허용했다는 말이 되겠다. 어쨌거나 신문방송학과 교수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정통 역사학자들이 거들떠도 안보는 당시의 신문기사나 방송의 인용은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있는 듯 생생한 현장감까지 주니 참신한 느낌마저 든다. 이는 다른 역사서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한국현대사산책만의 특색이다. 개인적으로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에 정서적으로 최대한 근접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느냐 없느냐는 올바른 역사 인식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셋째, 저자 자신이 역사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 책이 학술적인 가치로서는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역사를 좋아하는 일개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토록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1945년부터 시작하여 매 1년 단위로 정치, 사회, 문화, 외교 등 거의 전 분야에 걸쳐 이토록 자세히 또 생생하게 기술한 다른 역사책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이 전집의 구입을 주저하지 않게 만들었다.


이상으로 나의 한국현대사산책 구입동기를 밝히면서 짤막하게 시리즈의 1~2권에 해당하는 1940년대의 독후감으로 들어가 보자.

 

1940년대의 머리말에 보면 어느 학생이 1940년대를 조금 읽다가 너무 기분이 우울해져서 독서를 포기해 버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는 그 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배가 불러서 그래".


조금 냉정한 대답이란 느낌이 없지않아 있지만 이해가 가는 말이다. 어릴 때부터 좋은 부모 밑에서 온실의 화초로 자라온 지금의 청소년들이 어찌 당시의 비참했던 사회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나도 중간에 읽기를 포기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독서 내내 느낌은 저 학생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해방이 이루어지고 미국과 소련이 남북한에 진주하여 힘없는 나라의 운명을 그들 마음대로 주물럭거리고 있었을 때, 강대국 사이에 끼인 힘없는 약소민족이 당하는 설움에 속에서 울화통이 치밀어 오른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내용을 두 세개만 소개해 보자.


해방후 남한에 진주한 미군정이 이후 한국민들을 상대로 저지른 안하무인식 통치는 일제시대의 경찰보다도 더 악랄했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밝혀진다.


신탁통치에 관한 동아일보의 사실과 다른 결정적인 오보로 인하여 전국이 반탁운동의 물결에 휩쓸렸으며, 그 와중에 친일파들이 애국자들로 둔갑해 버린 사실은 오늘날까지도 우리 사회에 청산하지 못한 역사로서 짙은 아쉬움을 전해 준다 (1940년대 1권, p.145~155)


후세에 <인간사냥>으로까지 불리어진 제주 4.3사건은 해안선으로부터 5km 바깥의 사람들을 모조리 학살하는 이른바 <초토화 작전>이었다. 제주 4.3사건에 대한 당시의 원인과 그 배후세력, 주모자 등에 관해서는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권력에 집착하는 위정자의 욕심+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강대국의 음모= 제주 4.3 사건>이라는 공식을 알게 되면 아마 자신도 모르게 치를 떨게 될 것이다.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도를 찾아 <국가권력이 불법으로 무력을 행사하여 양민을 학살한 잘못>을 정식으로 사과하여 제주도민들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주기까지는 무려 58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 (1940년대 2권, p.195~217). 불과 8년 전의 일이다.


더 자세한 내용들은 책을 읽어 보시길 권한다.


당시에 내가 태어나지도 않았고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학교에서도 배우지 못했으니 내가 몰랐던 것도 당연하지만, 책 속에는 해방 이후의 사회가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 그 와중에 미군정과 이승만의 비호를 받은 친일파들이 어떻게 득세하여 애국자로 둔갑하게 되었는지, 정치가들은 좌파니 우파니 갈려서 얼마나 싸움질을 해댔는지, 남과 북은 어떻게 갈라서게 되었는지 그 상세한 전말이 방대한 역사적 사료들을 바탕으로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1940년대는 우리들의 부모님과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살았던 가장 가까운 시대이다. 또한 저 시대에 벌어졌던 사건들이 아직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들도 많다. 그렇다면 그 시대의 역사는 우리가 몰라도 되는 그런 역사가 아니라 반드시 제대로 알아야 할 역사가 된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70년만 거슬러 올라가면  대한민국의 탄생의 비밀을 만날 수 있고, 미군과 이승만의 비호를 끼고 득세하는 친일파들의 뻔뻔스런 행적을 볼 수 있으며, 오늘날 우리가 맹방이라고 부르는 미국이 해방 당시에 남한 국민들을 어떻게 무시하고 개취급하였는지, 남북분단이 어떻게 고착되어 버렸는지 등등의 기록을 생생하게 읽을 수 있다. 


1940년대는 그 우울한 정치적, 사회적 배경이 배경인 만큼 결코 편안한 마음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하지만 그 산책이 아무리 우울하고 힘든 길이라도 한 번은 걸어볼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는 민족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현대사 산책 세트 - 전23권 - 10점
강준만 지음/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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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박한 독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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