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년전에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옆을 운전해 지나가면서 속으로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기억 속의 그 넓었던 운동장과 큰 건물들이 수십 년이 지나 어른의 눈으로 다시 보니 충격이었을만큼 협소하고 작았던 탓이다.


기억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왜곡된다. 특히 기억이 추억과 연계될 때 그 왜곡 속도는 빨라진다. 왜곡이란 기억 속의 원래의 이미지가 시간이 흐를수록 미화되거나 의미가 과장 혹은 축소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사람의 기억만큼 믿지 못할 것도 없다고 했다.


요즈음 날씨가 추워서인지 방에 앉아서 독서를 하는 시간이 좀 늘었다.

한동안 종교에 관련된 서적을 섭렵하다가 음모론으로 넘어가서 역사소설을 거쳐, 이제는 동양사상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 한 마디로 중구난방 잡식성 독서이다.


그러한 방구석 독서를 지속하던 어느 날, 우연히 <성혈과 성배>라는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수 년전에 지인에게서 선물받았던 책이고 이미 읽었던 책이다. 참고로 저자가 <다빈치 코드>를 쓴 댄 브라운을 표절로 고소하면서 새삼 유명해졌던 책이기도 하다. 

독서 당시에 나는 이미 <다빈치 코드>를 읽었던 터라 주제와 내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또 두꺼운 볼륨감과 촘촘한 내용에 질려서 그다지 흥미를 못느끼며 억지로 독서를 마쳤던 책이다. 당연히 머리 속에 남은게 있을 리 없고 재미는 커녕 딱딱한 인문책이란 기억만 남았다.


2주 전 쯤에 두 번째 독서를 시작하며 그러한 나의 기억이 사실은 왜곡된 것이었다는 자각이 일어났다. 책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 나가며 나의 그런 생각들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철저한 자료 고증에 의한 추적식 기법의 묘사는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듯 흥미진진했고, 그 과정에서 얻게 된 수많은 중세 기독교에 대한 지식들은 말 그대로 보물창고였다.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결론은 중요하지 않다. 허구가 섞였긴 하지만 소설 <다빈치 코드>를 통하여 이미 다 알고 있던 것이기도 하고.


프랑스의 한 시골 마을이 졸지에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고, BBC에서 관련 다큐멘타리도 제작하여 방영한 이 책의 진가를 새삼 발견했다는 말이다. 물론 훌륭한 번역도 기여했겠지만.


왜 이전의 독서에서는 그런 것들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그저 지겹다고만 느꼈을까? 

독서 후에 새삼 깨달았지만, 첫 번째 독서에서는 방대한 자료와 이리저리 튀는 이야기의 진행방식을 따라가기 급급하여 이야기의 전체적인 핵심을 못 잡았던 것이다.

독서후 <성혈과 성배>가 나의 기억속에서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으로 다시 자리를 고쳐 잡았음은 물론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모든 사람에게 중세에 대한 지식을 넓혀주는 양서라거나 좋은 책이라는 의미가 아니니 오해없으시기 바란다. 교회의 교리를 믿는 기독교인들에겐 악서나 다름없는 책일 수도 있다. 단지 두 번째 읽는 독서가 얼마나 다른 느낌을 가져다 주는지 강조하기 위하여 예를 든 것이다).


<이윤기님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도 생생하다. 

토마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의, 풍부한 칼라 삽화가 곁들여진 이윤기 특유의 이야기식 서술 방식이 너무 재미있었다.


시간이 좀 흐르고, 두 번째로 읽었다.

어라? 이 분 알고 보니 이야기가 의외로 주제와 상관없는 곁가지로 자주 새네? 문장에 옛스러운 투가 가끔씩 등장하는 것도 현대 문체에 익숙한 눈에 약간 거슬리게 다가 왔다. 물론 그렇다고 재미가 반감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이윤기라는 작가의 글쓰기 습관에 대하여 좀 더 알게된 계기가 되었다고 하면 정확할 것이다. 덤으로 그 전에는 건성으로 넘겼던 사소한 부분들까지 좀 더 깊이 알게되는 유용한 독서 시간이 되었다. 왜 그런 것들이 첫 번째 독서에서는 안 보였을까?


나의 청소년 시절에 나에게 커다란 감화를 끼친 책들이 몇 권 있다.

두 권만 밝힌다면 법정스님의 <무소유>와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이다.

<무소유>는 스님의 그 물욕없는 청정한 정신세계에, <생활의 발견>은 주위의 사소한 것들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 저자의 깊은 내공에서, 두 작품 다 총각 시절의 나의 정신 세계에 깊은 파도를 일으켰던 책들이다.


최근 그 책들을 다시 읽으며 새삼 세월의 흐름에 나의 의식과 감정이 그 때와 비교하여 얼마나 많이 변화하였는지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수 십년의 간극을 두고 같은 책을 읽었을 때 그 느끼는 감동의 차이는 자신의 인생 경험과 비례하기 마련이다. 내가 젊었을 때 그 책들에서 감동을 느꼈다면, 나이가 들어 두 번째 읽었을 때는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깊은 공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기억나는 문장의 경우에는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감정들이 살짝 되살아나기도 했다.


이래서 진정한 독서는 두 번째 읽을 때부터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책은 처음 읽을 때는 그 맛을 보는 것으로 그치지만, 두 번째 읽을 때는 미처 드러나지 않고 숨어있던 작은 맛까지 음미하게 되며, 세 번째 이상부터는 그 오묘한 맛들의 조화를 즐길 수 있게 된다고 했다 (나의 "당신에겐 애독서가 있습니까"에서 발췌). 하지만 여러 번 읽는 독서가 중요한 이유는, 읽을 때마다 나의 생각의 성숙함을 재어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의 경험에 비추어 같은 내용이 다르게 다가옴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독서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내용을 읽는다는 의미를 넘어, 책이라는 기준표를 놔두고 세월이 흐르면서 변화해 나가는 나 자신을 읽는 것이다.


나는 책의 첫 장을 넘길 때 언제나 마음이 설레인다. 그리고 그 설레는 느낌은 두 번째  독서에서도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그 설레임은 진도를 나가면서 점점 몰입으로 바뀌고, 어느 순간 내가 처음 읽었을 때 받았던 느낌들을 스스로 업데이트하기 시작한다. 오늘의 나의 경험에 비추어 과거의 것을 덮고 새로운 나의 것으로 바뀌기 시작하는 것이다.


<성혈과 성배>의 두 번째 독서에서 증명하듯이, 두 번째 읽을 때는 첫 번째가 가져다 주지 못한 이야기의 전체적인 틀이 한 눈에 보이기도 하며, 심지어는 문장 사이의 숨은 뜻이 읽혀지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업데이트된 정보와 감상적인 느낌들이 원래의 이미지 위에 덧칠하듯 씌워져 보다 명료하게 틀을 잡는다. 처음 읽으며 머리 속에 얼기설기 엮어졌던 느낌과 지식이 어느 정도 제대로 뼈대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결론으로, 독서란 되풀이하여 여러 번 읽어야 한다.

좋은 책일수록 씹고 씹어서 완벽하게 나의 것으로 소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번 읽고 버릴 책은 가급적 멀리 하는 것이 좋다 (균형잡힌 정서함양을 위하여 읽어야 하는 양질의 소설이나 문학 등을 멀리 하라는 말은 아니다).

누군가는 "두 번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은 한 번 읽을 가치도 없다"라고 말했다.

악서를 멀리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전적으로 공감하는 말이다.


두 번 이상 읽을 책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만의 애독서 라이브러리를 가져야 한다. 

평생을 두고 나의 지적거름이 될 만한 가치가 있는 책들은 발견하기란 말처럼 그리 쉽지 않다. 하지만 1년에 한 권씩 나만의 애독서를 늘려가면 10년이면 벌써 10권이 된다.


애독서란 명사들이나 잘 나가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잘 생각해 보면 당신이 읽었던 책들 중에서 평생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책들은 서가에 잘 보관하면서 언제건 꺼내어 읽을 준비가 되어 있게 하라.

2독이 3독 되고 나아가 5독 10독이 될 때, 그 책의 진정한 가치가 어느 순간 당신의 의식 속에 녹아들어 당신과 한 몸이 될, 평생 마르지 않는 소중한 마음의 양식이 되기 때문이다.



주제가 살짝 빗나간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두 번 이상 읽을 독서를 하기 위해서 좋은 책을 골라야 한다는 말이니 크게 틀리진 않는다고 본다.


사람은 늙어 갈수록 벗과 책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오랜 친구를 만나 소주 한잔 나누며 인생을 반추해 보는 것도 삶의 樂이듯이, 인생의 어느 순간 오래 전에 감동받았던 책을 다시 펼치는 그 마음 또한 작게는 인생의 즐거움이요, 거창하게 말하면 바로 공자가 말한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실천 아니겠는가?



p.s.)

요즘 희한한 습관이 하나 붙었다.

개인적으로 도서정가제에 반대하는 뜻에서 가급적 책을 사보지 않고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는 편인데, 감명깊게 읽고난 책은 도서관에 반납하고 난 후에 꼭 다시 온라인 서점에서 다시 주문한다. 이 때는 도서정가제고 나발이고 그냥 사버린다. 검증이 끝난 책이기 때문에 돈 몇 푼의 차이가 이때는 중요하지 않다. (도서정가제 때문에 마음에 든 책만 구입하는 습관이 들다 보니 책 구입비가 대폭 줄어든 것은 어쨌든 고마운 일이다. 이전같이 광고나 현란한 표지, 혹은 대폭 할인등에 혹해서 그다지 영양가없는 책들을 사는 일은 아예 없어져 버렸으니까. 악법도 이럴 때는 도움이 되기도 하는구나.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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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박한 독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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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도 책 안사고 싶은데 제 업무분야 전문서적은 그렇게 할 수 없더라구요 ㅠㅠ

    2016.01.23 12:3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당연하죠~ 전문서적까지 안사시면 어떡합니까?ㅎㅎ
      출판사 이익집단들이 자체 개선을 통해 경쟁력을 높일 생각은 안하고 맨날 제도탓, 불황탓, 과열경쟁 탓만 하니 답답하기도 하고...자기네들 문제를 법에 기대어 해결할려는 이기심이 싫어서 나름대로의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중입니다.ㅎㅎ

      2016.01.23 14:04 신고 [ ADDR : EDIT/ DEL ]

[소박한 독서가가 추천하는 책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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