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常의斷想2017.05.20 16:09



최근, 지하철에서 목격한 광경 몇 가지이다.


10대 중학생들이 비어있던 경로석에 앉아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버르장머리없는 x들>이라고 야단을 치던 노인이 있었고, 술 취한 노인 둘이서 일반석 좌석에 앉아있던 두 여성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요구하던 모습이다. 여자들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일어서서 자리를 양보해 주고 다른데로 떠나가자 그 중의 한 노인이 앉으며 친구에게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린 80이니까 젊은 사람들에게 자리 좀 요구해도 돼. 우린 곧 죽을거지만 젊은 사람들은 앞으로 실컷 앉을거잖아. 허허허"


맞는 말인가? 틀린 말인가?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어린 사람들에게 일정한 행동이나 양보를 강요할 수 있을까?


경로석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어린 학생들에게 야단을 치던 할아버지의 태도는 내가 보기에도 분명히 지나친 면이 있었지만, 젊은 여성들에게 자리를 요구하라고 강요하던 할아버지들의 태도는 어떤가?

과연 이해할 만한 행동일까? 세계적으로도 소문난 우리나라의 경로사상에 기대어 조금만 너그럽게 생각하면 이상하게 보일 것이 없는 행동일까? 설혹 그렇다고 해도 자발적인 양보의 기회를 뺏긴 채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리를 일어서던 젊은 여자들의 기분은 과연 어땠을까?


솔직히 지금도 명쾌하지 않은 뭔가가 나의 가슴속에 의문을 남기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유념해야 할 것들이 있다.

아프지 않도록 건강도 꾸준히 관리해야 하고 금전적인 노후대비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하지만 끝까지 여유로운 마음으로 관조하는 풍요한 삶을 살기 위해선 그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시간이 갈수록 굳어져만 가는 자신만의 <주관적 관념>이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게 자리잡아 마침내 그것이 <꼰대의 독선>이나 <옹고집>으로 발전하지 않게끔, 언제나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며 관리하는 일이다.

 

자신의 생각이나 가치기준이 옳다고 믿으며 혹은 자신의 오류를 인지하지 못하는 채로 아니면 자신은 논외로 한 채, 타인에게 일정한 행동을 강요하거나 남을 재단하고 비판하며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부처님이나 예수님같은 성자분들을 제외하고 나를 포함한 나머지 사람들은 다 이 부류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우리들 모두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체적으로 타인에 대한 우월의식 혹은 열등의식을 조금씩 가진 사람들로서 살아 오면서 균형있는 경험을 골고루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각자 이성(?)이라고 믿는 관념과 자신만의 경험적 판단으로 굳어진 확고한 기준(?)을 설정해 놓는다. 그리고 어느 누구라도 그 기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가차없이 혹독한 비판을 가하곤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남들이 수십 년 걸려 쌓아온 인격과 인간성을 단지 그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단 한 마디의 말로 평가절하해 버리곤 하지 않는가?


이런 사고와 행동들에 대해 자아비판이나 반성없이 그때 그때 기분대로 살다보면 그의 마음속에는 자신도 모르게 어느 날 <꼰대의 철학>이 떡하니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생각과 思考>는 자라는 생물이다. 

가만히 놔두면 스스로 뻗어나가 종국에는 어디에 종착할 지 모르기 때문에,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사고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도록 끊임없이 내면을 관찰하고 조정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 올바른 <경험>과 <학습>이 중요한 이정표와 필터가 된다. 그러한 가이드나 필터가 온전히 작동하게끔 스스로 언제나 경계하며 갈고 닦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그러한 노력이 결여된 사람도 다수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후자의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서 걸러내야 할 오류 내지는 잘못된 인식이 무엇인지 지금은 물론이요 앞으로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할 것이다.


세상은 변한다. 가치도 따라서 변한다. 그런데 본인의 가치만 고집스럽게 변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서 사회적, 문화적 검증과 반성을 게을리 한 채 고집대로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자신은 남들에게 시류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인식되게 된다. 


그것이 바로 꼰대의 삶이 아닐까? 그 사람이 하는 생각이 바로 <꼰대의 생각>이고, 그런 <꼰대의 생각>을 가진 자들의 눈에는 남들의 행동이 다 그릇되어 보이지 않을까?


<꼰대의 마인드>를 가진 자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요즘 것들은...뭐가... 이래서 저래서 안돼.> 혹은 <우리때는 안그랬어.>

요즘 것들이 잘못 되었을까? 자신만의 변하지 않는 기준으로 변화하는 시류에 적응한 요즘 것들을 싸잡아 비판하는 저들이 잘못되었을까? 


재미있는 것은 <요즘 것들은 이래서 저래서 안돼..>라는 멘트는 조선시대의 꼰대들도 즐겨 쓰던 말이었다는 사실이다.


<꼰대적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다름아닌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놓거나 혹은 짙은 색안경을 끼고 주위를 바라보지만 자신은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전 인생에 걸쳐 자신만의 소신대로 살다보니 내면의 생각과 행동들이 독선으로 굳어져 콘크리트화 되어 버린 탓이며, 또한 <자신이 배우고 겪었던 경험과 문화적 학습>과는 다른 <변화된 문화와 시류>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양의 바닥이 얕은 사람일수록 이성과 교양을 내세우며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거기에는 흔히 <자신만의 사고>와 <꼰대적 생각>이 짙게 버무려져 있는 경우가 많다. 


<생각>이 <잘못된 경험과 학습>에 의해 -제대로 가이드되지 못한 채- 삐딱하게 자라도록 방치해 온 사람은 본인의 사소한 실수로 인하여 혹은 보다 까칠한 사람에 의해 그것이 지적되는 순간, -개인의 의지와 성격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대체적으로 본인이 자랑하던 교양의 바닥을 순식간에 드러내며 격렬한 감정을 상대에게 표출하거나 혹은 적개심을 드러낸다. 삐딱하게 지어져 있는 자신의 성벽의 부실함과 위험성을 남들이 발견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부실한 성벽을 허물고 보다 튼튼한 재료로 다시 쌓는 것을 택하는 대신,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비밀을 드러낸 사건이나 인물로부터 슬그머니 도망가 버린다.


여기에서 상대의 허술함을 지적한 사람은 과연 그것이 잘한 행동인가에 의문이 남는다.

그 사람은 상대의 잘못을 깨우쳐 준답시고 자신의 주장을 강요 하지는 않았을까? 그 결과, 상대가 비록 자신의 판단과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인지했다손 치더라도 자존심때문에 그것을 끝끝내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지식인이 아닌 인격자인체 행세하다가 타인에 의해 그렇지 않은 실체가 적나라하게 까발려져 본 적이 있는가? 그것으로 인해 상대가 끝없는 토론을 야기시키면 비록 이성으로는 그 사람의 말을 맞다고 인정 하더라도 감정은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자존감을 앞세우며 상대와 격렬히 토론해 본 적이 있는가? 99%의 우리는 아마도 거기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좀 더 다양하고 균형있는 경험과 함께 마음 공부를 쌓을 필요가 있다.


상대를 온전히 설득할 자신이 없다면 토론은 시작하지 않는 것이 낫다. 남의 논리가 허술하게 보이더라도 온전히 설득할 자신이 없다면 아예 처음부터 지적하지 않는 것이 낫다. 주장을 하지 말고 언제나 부드럽고 차분한 목소리로 당신의 생각을 말하라. 받아 들이고 않고는 그 사람의 선택이다.


당신이 그렇게 함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자기의 주장만을 강요한다면 그 사람은 당신과는 대화의 코드가 맞지않는 사람이다. 또한 <꼰대 마인드>의 반대 개념을 <젊은 생각> 내지 <건강한 마인드>라고 정의한다면 그 사람은 나이와 상관없이 이미 <꼰대적 마인드>가 충만해 있는 사람이다.


모과의 향기와 썩은 달걀의 역겨운 냄새는 봉지를 겹겹이 씌워도 밖으로 새어 나온다. 사람 또한 겉모습과 상관없이 내면의 실체가 자연스레 드러나게 되어 있다. 각자는 썩은 달걀이 되지 않기 위하여 남의 잘못을 지적하기 보다는 자신의 잘못을 우선 되돌아 볼 것이며, 스스로가 행동으로 향기를 풍기는 <모과>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최근 읽은 책들이 제법 된다. 재독도 있고 초독도 있지만 대충 다음과 같다.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 법정 스님의 <산방한담>, 조지 아담스키의 <Inside the Flying Saucers>. 카스타네다의 <돈 후앙의 가르침>, 지나 서미나라의 <윤회의 비밀>등이다.


주제와 줄거리가 서로 다른 책들이지만 이 책들이 주장하는 공통된 가르침들이 있다.

<내적인 삶(인생의 가치추구)>이 그것이다!


인생의 내면적 가치 추구는 영혼의 발전에 밑거름이 되는 소중한 경험이자 공부이다. 따라서 그것은 밝고 올바르게 추구되어야 하며, 거기에 외적인 요소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외적인 요소를 끼워 넣으면 넣을수록 내면의 가치는 속물화되고 저급해져 간다.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생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는 속설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세상을 어떻게 살 지는 각자의 마음 가짐과 노력에 달려있다.


각설하고,

늙어도 꼰대 소리를 듣기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남의 잘못을 지적하지 말라

남을 가르치려 하거나 계몽하려 들지 말라.

나의 주장을 강요하지 말라. 

남에게 일정한 행동을 강요하지 말라. 

다른 생각은 다른 생각대로 인정을 해주라.

트랜드에 신경쓰고 융화하도록 노력하라.


말은 그 사람의 평소 마음가짐과 생각에서 나오고, 그 사람의 마음가짐은 말에서 단련된다.

남을 평가하거나 가르치려 하거나 일정한 행동을 강요하는 사람들은 그 마음에 이미 <꼰대의 마인드>가 가득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사고가 올바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이 왜 해서는 안되는 잘못된 행동인지 도무지 모르며, 오히려 자신의 그런 행동들이 상대를 가르치고 깨우치는 것이라 착각한다. 남을 비판하지 말라. 내가 남을 재단하고 비판하면 남들도 반드시 나를 비판하고 재단한다. 그것이 우주적 카르마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런 비판과 강요, 지적질하는 행동들이 바로 <꼰대의 행동>이다.


청년들은 <젊은 꼰대>가 되지 않도록 언제나 스스로 돌아 보아야 한다.

노인들은 <꼰대의 마인드>가 <꼰대의 행동>으로 표출되지 않도록 스스로 끊임없이 자신의 마음을 성찰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미 꼰대일까? 

아직은 꼰대가 아닐까..?





* 이미지는 본문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하여 구글에서 검색,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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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박한 독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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