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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취미생활

설렁설렁~ 5월의 북한산 사진등산기 (중성문-대동문-진달래길)

by 소박한 독서가 2010. 5. 18.
북한산 중성문-대동문-진달래길-4.19탑

아침에 일어나 하늘을 보니 구름이 짙다.

오늘 산에 가면 또 비를 맞는게 아닐까..망설여졌지만 어디 비맞고 산행한게 한두번인가..

머루랑 다래를 먹으며 청산에 살지는 못해도 이렇게 주말마다 산에 갈 수 있는 것 또한 나의 행복이라 생각하며 오늘도 집을 나선다..

사진은 북한산성 공원매표소를 지나자 마자 나타나는 국립공원 입석표지판이다.


북한산과 도봉산은 두 산이 합쳐져서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명명되어 있다.
 
등산로는 조합하면 100여개가 훨씬 넘게 나오며 봉우리만 수십개에 이르는 거대한 국립공원인데 의상봉 능선에 서서 좌우의 만경대 능선과 비봉능선을 바라보고 또 백운대너머 아스라히 보이는 도봉산의 오봉을 바라보노라면 이 말을 피부로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러한 명산을 서울시민들은 지하철로 간단히 접근할 수 있으니 이는 세계의 어느 수도시민들도 누리지 못하는 혜택이며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서울은 그야말로 축복받은 도시인 것이다.
하지만 산을 많이 타는 사람들도 의외로 북한산을 동네뒷산 정도로만 알고있는 사람들이 많아 안타깝기도 하다.
 
나이들면 북한산의 산장이나 하나 인수해서 오가는 등산객과 객담도 나누고 청산에서 살아가는 생활도 꿈꿔 보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오늘도 산에 살지 못하는 아쉬움을 등산으로 달래곤 한다.  
 
이곳은 초입에 마련되어 있는 주말자연학습 야외교실인데 사진을 클릭하면 북한산에 사는 동물의 이름들이 보인다. 물론 이것들 말고도 다람쥐도 있고 토끼들도 많다.


등산로를 걸어 가다보면 이런 들꽃들이 참 많다.
때묻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이란 이런 꽃들을 말하는게 아닐까... 
들여다 볼수록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길을 따라서...설렁설렁~~여기서 우측으로 가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의상봉 능선이다.


코너에 나타나는 대서문.
장장 10여km에 이르는 산성의 서쪽 출발문이다.
백제 개루왕이 처음으로 산성을 축조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조선 숙종때 북한산 성곽을 삥 둘러싸는 돌담을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 놓았다. 북한산은 삼국시대의 격전지이기도 하다. 


세월은 유구하되 春草들은 변함이 없다.
아무도 돌보아 주는 이 없건만 계절따라 성곽에 옷을 입히고 세월의 관록을 더해주는 들풀들..
오백년이 지난 뒤에는 너는 또 어떠한 모습으로 지키고 있을 것인가...


대서문을 지나자마자 나타나는 가게집옆에 붙어있는 거울이다.
셀프카메라 한장~^^


왼쪽으로 보이는 원효봉 릿지.
이곳에서 염초봉을 통하여 백운대로 갈려면 왼쪽의 저 험준한 바위벽을 가로질러 가야 한다.
물론 다른 편한 길도 있지만 그러면 스릴을 느낄 수가 없다.


이 마을은 북한동이라고 해서 삼국시대부터 존재해온 30여 가구로 이루어진 마을인데 지금은 법으로 지정되어 국립공원안의 마을로 보존되고 있으며 거의 모든 집이 등산객들을 대상으로 파전이랑 막걸리를 팔며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이 다리를 건너서 왼쪽으로 가면 위문과 백운대로 오르고 오른쪽 길은 대동문, 보국문등으로 오르는 길로 연결되어 있다. 물론 행궁터등 왕년의 산성안 주요 시설물터도 만난다. 또한 국녕사, 가사당암문, 부왕사터, 부왕동암문등이 숨어있는 의상봉 능선쪽도 이 코스에 들어간다.
 
나는 오늘 오른쪽으로 가서 대동문을 거쳐 진달래길로 갈 생각이다.


마을을 벗어나 본격적인 산행에 들어가기 전, 가게에 들러 사이다를 한잔 청해 마시고...
일하는 직원이 카메라를 보더니 사진하나 찍어 드릴까요? 해서 찍은 사진..^^
얼짱각도로 잘 찍어 달랬는데 맘에는 안든다...하지만 원판이 시원찮으니 할 수없지..^^


중성문이다.
유사시 왕이 대피하는 행궁터를 지키기 위하여 대서문 안쪽에 다시 쌓은 성 즉, 內城이다.
산행꾼들은 등산에만 몰두하느라 이 중성문을 무심코 지나가 버리는데 이곳은 역사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다.
왼쪽밑의 계곡에는 깍아지른 암벽사이로 기가 막힌 협곡이 형성되어 있다. 즉, 물구멍만 내고 막으면 천혜의 방어벽이 되는데 이른바 오간대수문은 그곳을 막아 만든 것이다. 이 문의 왼쪽에는 서암문이라고 조그만 문이 따로 있다.


바로 이것.
옛날에는 덤불에 숨겨져 있어서 등산객들이 쉽게 발견하지 못했던 문인데 옛날에 시체를 실어 내는데 썼던 문이다.


서암문의 안쪽.
죽는 것도 서러운데 죽어서는 이런 조그만 쪽문으로 나가야 한다.
옛날에 얼마나 많은 한많은 시체들이 이곳을 통과하였을까...
이 암굴안을 걸어가면 마치 상여의 방울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중성문의 성곽에 쌓아놓은 자그마한 돌무더기..
민초들은 이렇듯 소박하다...
여기에 돌무더기를 쌓은 사람은 무엇을 빌었을까...?
 
저 뒤에 보이는 바위는 노적봉이다.
암괴하나로 형성된 거대한 봉우리인데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달마대사의 얼굴로 보인다고 한다.
저 위에서 바라보는 북한산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을만큼 절경이며 주위에는 저런 바위암봉들이 즐비하게 널려있다. 


노적봉에서 지었다는 매월당 김시습의 詩.
북한산은 백운대, 만경봉, 인수봉을 합하여 삼각산이라고도 하는데 노적봉 정상에 서서 삼각산을 바라보며 지은 노래인 것 같다.


누가 들풀을 약하다고 했는가...
손만 대면 부러지는 풀이지만 이렇게 바위위에서도 훌륭하게 자라고 있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으며 돌보아 주는 이 없는 하찮은 풀 하나도 이렇게 바위위에서 뿌리를 내리고 꿋꿋이 살아가는 것을 보면 정말 생명의 신비함과 존엄함에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어떤 어려운 환경도 꿋꿋이 이겨내고 생명을 지켜나가는 억척스럼의 뜻이 담긴 '잡초'라는 말이 이 바위에 핀 풀에 정말로 잘 어울리지 않는가....
 
나도 저런 바위나 사막에 내던져지는 환경이 온다면 저 풀처럼 꿋꿋이 살아갈 수 있을까...
약하디 약하게 보이지만 환경을 탓하지 않고 오로지 생존에 전력을 다하며 그 아름다운 강인함을 드러내는 들풀과, 강한 척 하지만 어려움이 닥치면 자살도 서슴치 않는 약한 인간들...
둘 중 어느 것이 더 생명의 소중함을 알며 노력하고 있을까... 
 
물 한방울씩이 떨어져 바위에 구멍을 내고 이렇게 연약한 풀 하나가 바위밑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것을 보며 자연과 생명이란 것이 얼마나 존엄하고 위대하며 신비한 것인지를 다시금 느끼게 된다.


태고사 가는 길의 중간쯤에 즐비한 비석들...사진은 몇개 안나왔지만 약 20여기가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다.
무슨 비냐고? 옛날 북한산성 수비대 총사령관들의 자기 PR식 자화자찬 비들이다.
 
옛날에 일본인들이 좋은 것은 파가고 더러는 부숴 버려서 깨진 비석들이 많다.
그래도 우리 선조들의 유산인데...
 
섬나라 일본인들에게 굴복하여 깊은 산속의 이런 곳에까지 만행을 감수해야만 했던 우리나라.
볼 때마다 마음이 언짢다.


이 곳은 옛날 임금의 피난처인 120칸짜리 궁궐이 있던 곳이다.
비교적 최근까지 있었는데 일제시대때부터 방치되어 온 후, 1915년 집중홍수로 무너져 소실되어 지금은 희미한 흔적만 남아 있을뿐 들어가 봐야 아무것도 없다.


바위에 앉아 잠시 쉬노라니 어디선가 다람쥐 한마리가 내 발치로 온다.
호기심과 경계심이 섞인 눈으로 내 주위를 이리저리 살피지만 떠나지는 않는다. 
"사진하나 찍어줄까?"하니 포즈까지 잡아주고..^^
이 다람쥐는 내 발치에서 약 2분이상 놀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戰時대비 양곡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던 곳이다.
지금은 보는 바와 같이 돌무더기 몇개가 있을 뿐...
세월의 무상함이 이렇게도 무섭다..


등산중 곳곳에 보이는 옛날 성벽과 건물의 흔적들..이런 석벽들 뒤에는 얼마나 많은 선조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을까...
지금은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주는 이끼만 무성하다..


이곳은 군사들의 숙소가 있던 곳이다.
물론 여기도 지금은 잡초만 무성하고...


금위영이건기비.
위 사진의 군사들의 병영 바로옆에 안쪽으로 들어가 숨겨져 있는 비인데 대동문 옆에 있던 금위영 본부를 이곳으로 옮긴 사실을 기록해 놓았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87호.

 
국왕의 호위와 도성의 수비를 맡은 어영청이 있던 곳인데 사진에서 보듯이 지금도 약간의 흔적이 남아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절 비슷한 것이 들어서 있어서 그나마 옛날의 흔적이 점점 지워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설렁설렁 오다보니 어느덧 대동문..
조선 숙종대왕이 명령하여 지은 성문이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성벽을 타고 걷다보면 대성문과 대남문이 나오며 문수봉 비봉, 향로봉까지 갈 수 있고 왼쪽으로는 동장대와 용암문, 위문을 통하여 백운대까지 갈 수 있다. 
 
몇 년전...등산팀을 이끌고 겨울철에 야간 몰래등반하여 저 위에서 덜덜 떨며 찌개를 끓여먹던 추억이 있는 곳이다.^^


숙종대왕의 친필.


대동문을 벗어나 원래 가기로 했던 진달래능선으로 들어선다. 3.3km라고 되어있다.


오후 햇살에 비친 개나리봇짐을 짊어진 나그네의 그림자..


이 길은 5월이면 길 양옆으로 진달래가 무성하니 늘어서 있다. 그래서 진달래 능선이다.
양쪽으로는 수유리 시내와 만경대능선, 암벽등반의 메카로 알려진 인수봉도 잘 보이는 괜찮은 코스이다.


하산중 찍은 서울북부. 수유리겠지..
스모그가 많아 사진이 잘 안나왔다.


하산중 찍은 도봉산 전경. 북한산 국립공원은 저것까지를 포함한다.


수락산 전경.


불암산 전경. 사진은 별로지만 기상이 좋은 날은 경치가 그만인 코스이다.


저 밑에 보이는게 아카데미 하우스.
많은 일반인들이 저곳을 통과하여 이쪽 진달래 능선으로 진입하는 코스이다.
하지만 휴일이면 사람들로 미어 터져서 나는 한번도 오지 않은 길..

백련사 다 내려와서 위치한 심산 김창숙 선생의 묘.
평생을 항일운동과 독립운동에 바치다 돌아가신 분이며 일경의 모진고문에 못이겨 앉은뱅이로 반평생을 살았지만 일제의 통치를 반대하고 나라를 위해 노력하신 대가로 돌아가신 뒤에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받은 존경할 만한 분이다. 
 
(한마디 더)
비교적 더운 날씨여서인지 지금도 얼굴이 빨갛게 익어 홍씨같다.
물이 떨어져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 갈증을 느끼며 하산할 때의 괴로움이 백련사앞에서 만난 약수물 한잔으로 씻은듯이 가실 때의 그 기분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상쾌함 비로 그것이었다..
물이 이렇게 소중한 것이었을 줄이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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