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에서 혼자 까미노를 걸으러 온 친구가 있었다.
30대 즈음에 키도 크고 잘생겨 처음에는 특히 독일에서 온 여자들에게 인기가 짱이었다.
하지만 이 친구가 워낙 빈대를 잘붙고 여자 뒷꽁무니만 졸졸 따라 다니니 남자들 사이에서는 어느새 왕따가 되어 버렸다.
우리와도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길에서 자주 마주치곤 했었는데 유달리 서양인의 몸에서 나는 냄새까지 심했던지라 우리는 그 친구가 눈치안채게 가급적 멀리 멀리하며 지냈다.

이 친구가 이 날 저녁 늦게 내가 묵는 숙소에 들어 섰다.
그리고는 빈자리를 찾아 두리번 거리더니 마침 2층이 비어있던 내 침대로 왔다.
무지 반가운 척 인사를 몇마디 건네더니 자기가 비어있는 위쪽에서 자도 되겠냐고 물어본다.
당연히 그의 자유니 마음대로 하라고 했고...

문제는 이 친구가 비에 젖은 옷이랑 우비랑 양말을 훌훌~ 벗어 침대 난간에다 널기 시작하는데 졸지에 1층에 자리잡고 있던 나는 마치 텐트안에 갇힌 형세가 되었다...거기다 심한 몸냄새와 며칠을 빨지않아 더러운 옷과 양말에서 풀풀 풍기는 냄새가 합쳐져 거기에서 한 시간만 누워 있으면 두통으로 사망할 지경...

참다못해 빨래들을 밖에다 널면 안되겠냐고 물었더니 밖에는 비가 오기 때문에 빨래를 널 수가 없단다.
창문을 열고 확인을 시켜주며 비는 이미 그쳤고 짠뜩 끼었던 구름도 흩어지고 있다고 하니 언제 또 비가 올지 몰라서 안된단다.
항복~! 내가 졌다...

주위 사람들도 말은 안하지만 온 방에 더러운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는 이 이기적이고 싸가지없는 아이리쉬의 뒷통수를 째려보고 노려보고 있었고...마침 건너편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프랑스에서 온 아가씨 한 명이 나에게 손짓을 해 불러서는 자기 윗 침대가 아직 비어 있다고 넌지시 알려줘서 아직도 왜 빨래를 밖에다 널어야 하는지 이유를 몰라 의아해 하는 그 친구를 남겨두고 나는 얼른 다른 침대로 도망을 가 버렸다.

이 친구는 며칠 뒤, 결정적으로 영원한 왕따가 되어 버리는 재미있는 사건을 또 일으킨다.

새벽의 여명.

도시에는 조용한 곳이 없다.
시원한 바람과 들판도, 청량한 하늘도 없다.
뜨거운 햇살과 드넓은 평야에 광활한 대자연을 가지고 있는 복받은 나라, 스페인..

인구 84명의 비교적 큰 마을인 모라티노스를 지나고 있다.

끝없는 지평선만 있는 메세타에서 냉장고의 역할을 하는 곡식저장고.

어제 내린 비에 씻겨진 들판의 향기를 즐기며 걷는 일행들.

초록의 바다란 이런 것이 아닐까..
땅이 풍요로우면 그 위에서 사는 사람의 몸과 마음도 같이 풍요로워진다.
한번 지나가면 언제 다시 올 지 모르는 길이기에 오늘도 마음 가득 풍요로움을 안고 걷는다.

팔렌시아 마지막 마을.
여기를 지나면 이제 레온주로 들어간다.

들판 가득한 이름모를 꽃.

우리가 묵은 숙소

원래는 수도원이었던 숙소 입구.

할 일 없기는 마찬가지..
밖에서 띵~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원이와 나.

숙소 내부는 깨끗하다.

매일의 행사가 되어 버린 와인 한잔~
하긴 와인 한병 가지고 3명이 나눠 마시니 많은건 절대 아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길을 떠나는데..특이한 마을대문.

여기까지 걸어오며 이런 형태의 십자가는 수 십번은 봤을 듯 싶다.

짠~!!!! 쿵~!!!! 쿠쿵~!!!!
산티아고까지 315km...!!! ㅋㅋ


기나긴 여정중에 길에서 죽은 순례자의 무덤..

덥긴 했지만 그래도 이 날은 정말 봄날씨 같았다.

길 가의 십자가 탑에서 쉬고있는 나.
저 글은 물어보니 '레온의 독립을 쟁취하자~!' 뭐..이런 소리란다.

봄꽃 사진..ㅋㅋ

엘 부르고 마을

길 가에 서 있는 멋진 십자가.

우리가 묵은 숙소.
여기도 공립이라 요금은 자기 마음대로 기부하면 된다.
오른쪽에 하얀옷 입고 나를 쳐다보고 있는 여자가 바로 며칠 전 냄새나는 죽음의 위기에서 나를 구출시켜 줬던 아리따운 프랑스 아가씨다.

이제는 좀 떨어질 때가 되었건만 진드기처럼 계속 주위에서 얼쩡거리던 그 아이리쉬는 이 날도 여기에서 묵으며 진드기짓을 벌이는데...



재미있는 사건이 이날 저녁 주방에서 일어났다.
매너까지 왕싸가지라 처음의 인기는 어디론가 다 날아가 버리고 어느새 남녀 모두에게 기피인물이 되어 있던 그 아이리쉬 친구.
어디선가 먹다남은 스파게티용 국수 조금 들고 나타나서는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며 슬슬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낌새를 보니 누가 스파게티 만드는 사람이 있으면 그걸 들이밀고 합쳐서 같이 만들어 달라고 부탁할 모양인 듯 싶었다.
다행히 우리는 그 때 밥을 짓고 있어서 일단 그 친구의 사정권에서는 벗어 났고...
 
아니나 다를까...처음엔 친하게 지냈지만 이제는 남과 다름없이 보이는 예의 그 독일 아가씨들에게 가서 부탁하는 모양이었다.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나 싶어서 호기심에 재미있게 구경하고 있는데 역시 나의 예상대로 매몰차게 그것도 단칼에 거절당해 버렸다.ㅋㅋㅋ
그래도 얼굴 두껍기가 족히 10cm는 되는 친구라 그 창피에도 불구하고 진드기처럼 집요하게 부탁하더니 결국은 아가씨들의 스파게티 요리에 국수 빈대를 접목시키는데 성공했다. 기가 찬 건 국수는 1인분을 넣고 완성된 스파게티 요리를 접시에 담아 갈때는 2인분은 족히 넘을 만큼 어마어마한 양을 담아 갔다.

마당 한 구석에서 친구도 없이 혼자 한 접시 가득 스파게티를 끼고 흐뭇한 표정으로 먹고 있는 그 친구를 보며 우리는 다 같이 배를 잡고 웃었다.

회사에서 업무관계로 아이리를 보스로 모시고 몇 년간 같이 일한 적이 있었다.
영국에 침탈당하고 박해받던 민족이어서인가..유난히 자기 보호 본능과 기회에 강하다는 느낌을 가졌었는데 역시 민족성이란 비슷한 모양...

(계속~)
Posted by 소박한 독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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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06.21 1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 하하하하.....아이리쉬 청년, 정말 왕재수!!!
    그런사람 딱~싫어요!!!
    왜 기피인물인지 이유를 알겠네요....ㅋㄷㅋㄷ

  2. 발해 2011.09.04 0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순례길 끝에서 깨달음을 얻을지 과연...그곳 그길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