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친구 지기와 즐겁게 술 한잔을 마시고 숙소 마당에서 잠시 쉬고 있으니 앞에서 조그만 도마뱀 한마리가 알짱거린다.
촌구석에 사는 이 놈도 사람이 그리운지 내 바로 50cm 앞에서 저 자세로 꼼짝않고 30분 정도 일광욕을 했다.
왠지 보기가 안쓰러워 초리초를 조그맣게 잘라 던져주었으나 먹지는 않았다. 원래 입이 고급인가..?
 

저녁에 만들어 먹은 카레라이스.
머나먼 이국의 그것도 지도에도 나와있지 않을 조그만 촌구석에서 오이냉채랑 먹는 카레밥~
그 맛은 설명할 필요도 없다..
외국 친구들이 우리 식탁을 보고 원더풀~을 외친다.ㅎㅎ
한동안 맛있게 마시던 저 스페인의 국민와인 돈시몬도 오늘로서 마지막이다.
(내일 들어가는 마지막 州인 갈리시아에서는 구경하기가 힘들단다) 
그래서 저 와인을 다 마셔 버렸다^^

다음날, 우리는 레온州의 마지막 땅을 밟기 위해 길을 나섰다.
오늘부터 하루종일 등산을 해야 한다.
예수님의 성배가 숨겨져 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는 첩첩산중에 위치한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오-세브레이로 마을을 지나기 때문이다.


거의 북한산 두 개 정도를 넘는 등산을 거쳐 나타나는 라 파바 마을.


중간에 잠시 휴식차 들린 성당.
성배가 잠시 들렀다 갔다는 이야기가 있는 매우 유명한 곳이다. 
마당에 서 있는 순례자 동상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성당안에서 10년 전에 돌아 가신 천주교 신자이셨던 어머님을 위한 초를 구입했다.
제일 밑의 제일 밝은 초가 어머님을 위해 봉헌한 초.


말은 몰라도 대충 감으로 'In memory of...어쩌고' 하는 글과 함께 성배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보니 전설이 맞긴 맞는 모양..


다시 한참 길을 가다가 뒤를 돌아 찍은 사진.
한 여행자가 땀을 뻘뻘 흘리며 오고 있다.
족히 6~7시간은 쉬지 않고 산길을 오르락 내리락 했던 것 같다.

앗~! 지기다!! ㅎㅎ
조금 전에 도착하여 다리쉼을 하고 있단다.
왼쪽의 지기친구는 며칠 전부터 다리 인대가 늘어나 절뚝거리며 잘 못걷고 있었지만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픈 아들을 위하여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다. 이날 아침에도 느린 속도를 감안하여 우리보다 두 시간 일찍 길을 나섰는데 여기서 만난 것이다. 다리는 좀 어떠냐 물어보니 죽을 지경이란다. 실제로 매우 심하게 절뚝거리고 있었다.
그만 포기하는게 좋지 않겠느냐 했으나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집에서 아빠의 완주 소식만 기다리고 있을 아픈 아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하여 절대로 그럴 수는 없다고 한다. 잠시 숙연한 분위기...


카페 앞에 이제 산티아고까지 154km가 남았다는 팻말이 걸려 있다.
독일 친구도 저걸 가리키며 650km를 걸어 이제 154km밖에 남지 않았는데 여기서 포기할 수가 있느냐며 씩 웃는다.
그러면 큰 마을이 나타나면 꼭 병원에 들러 응급처치라도 하라고 해 주고...


카페에서 먹은 음식. 
갈리시아 주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깔도 스프이다.
아직 공식적으로는 갈리시아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첩첩산중이랑 음식이 이미 갈리시아 분위기를 주고 있다.
꼭 우리나라 미역국에 감자를 넣은 국같은데 맛은 전혀 틀리다.  


잃어버린 성배의 전설을 찾아서 가는 길이니 힘들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야말로 산 속의 산 속의 산 속의 산길...

드디어 마주친 갈리시아州 경계석.
지치고 힘 빠져서 헬렐레하는 나의 표정..


산티아고 가는 길은 고비가 3개 있다.
첫 째는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넘어노는 피레네 산맥 횡단이고 둘째는 끝없는 메세타 평원을 주파하는 것이며 마지막이 이 오-세브레이로 오는 길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로서 드디어 세 개의 고비를 무사히 끝냈다.
사진은 저녁 무렵에 드디어 도착한 오-세브레이로.
성배가 숨겨져 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라 뭔가 대단한 것을 기대했건만 의외로 조촐한 마을이다. 


마을에서 쳐다 본 전경.
사진에 보이는 찻길들은 다 최근에 만든 것이다.
이전에는 여기까지 올려면 다 우리같이 걸어서 와야 했단다.


알베르게에서 짐을 풀고...마을 구경을 나선다.


마을의 한가운데 있는 유럽의 도보여행길 지도.
저 선들이 전부 도보여행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곳 까미노같이 여행자를 위한 화살표나 저렴한 숙소등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지는 않아 외국인이 도전하기는 힘들다.


성배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는 마을의 조그만 성당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으리으리한 성당과는 딴 판으로 의외로 매우 검소하다.


저것이 이 마을의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는 성배의 모형.
성배의 전설로 인하여 마을이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되며 관광객들이 밀어 닥치자 최근들어 관광버스가 다닐 수 있는 길도 내고 전설을 찾아온 사람들을 위한 모형도 이렇게 전시해 놓았다. 


확대사진..
나중에 주변 사람들에게 손짓발짓으로 이 마을에 성배가 진짜 숨겨져 있느냐고 물어봤더니 다들 그런 이야기만 들었지 모른다고 했다. 하긴 물어본 내가 어리석지...
어쨌거나 내가 서있는 곳에서 불과 몇 백미터 안쪽 가까운 어딘가에 진짜 성배가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저절로 경건해진다.  


지겹도록 만나는 이 돌십자가도 예사로 안보이고...


밤에 마신 돈 가르시아 와인.
어제 마신 돈시몬보다는 맛이 못하지만 어쩌겠나...갈리시아州에서는 돈 가르시아밖에 안판다고 하는데..
가격은 이것도 마찬가지로 1~2유로 사이.


(계속...)
Posted by 소박한 독서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06.26 15: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저도 걷기 여행이 너무 너무 하고 싶어집니다.
    이런 저런 여유가 없어서 못하고 있는 현실이 더위를 부채질하네요. ㅎㅎ
    스페인에서 먹는 오이냉채 맛이 궁금해지네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2.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06.26 15: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choikimoon님
    제 블로그에 와주셨더라구요...ㅎㅎ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정말 멋진 곳이네요..까미노 데 산티아고라고요..이야~정말 한번쯤 가보고 싶네요..
    choikimoon님 덕분에 좋은 여행합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3. ★안다★ 2010.06.26 20: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성당이 의외로 검소하네요...하지만 저런 소담스런 분위기가 정말 좋다는요...^^
    달빛님의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따라온지가 어느덧 17회 인가요?
    왜 저에겐 얼마 안된 느낌이죠?
    재미 있게 읽어서 그런가...정말 횟수가 이렇게 된지도 몰랐네요~
    항상 재미있고, 또 중간중간 여러가지 생각나게 하는 달빛님의 맛깔나는 글과 사진 잘 보고갑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4. 1 2010.06.27 0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이 길을 꼭 덜어보고 싶어요.
    언젠가 언젠가 언젠가...

    • 소박한 독서가 2010.06.27 13: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완주하고 난 뒤의 그 성취감과 느낌은 참 좋습니다.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며 한발 한발 내딛는 그 길을 한번 가 보시길 추천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5. 미유엄마 2010.06.27 18: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들이 너무 멋있네요. 사진집 내셔도 될듯..
    저도 저런 여행 가고 싶어지네요.
    20대때의 배낭 여행과는 다른 뭔가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여행...
    20대에 유럽 배낭 여행을 한적이 있는데 기억에 남은게 별로 없었어요..
    소설 연금술사를 연상시키는 사진들이에요.

  6.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06.28 1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인이 팩에 있네요?
    신기한데요^^
    미역국 같이 생긴 슾도 좀 먹어보고싶고..
    너무 궁금합니다~ 어떤맛일까?

    • 소박한 독서가 2010.06.28 17: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팩와인은 값도 싸고 맛도 그런대로 마실만 합니다.
      우리나라도 수입하면 좋을텐데..워낙 스페인 사람들이 마셔 조져서 아마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하하
      저 스프맛은 좀 짭니다..눈을 감고 짠 감자랑 미역을 씹고 있다고 생각해 보시면 정확...^^

  7.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06.29 0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인도 팩소주 같은 포장이있군요!
    중간에 카페에서 드셨다던 스프는 미역국인줄 알았어요~ㅎ
    성배 하니까 다빈치코드도 생각나고
    인디아나죤스 영화도 잠깐 생각나네요...
    느낌이 남달랐을것 같아요..

    그나저나 계속 보다보니, 달빛님, 정말 대단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