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하여 먼저 오디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오디오 애호가들은 처음부터 오디오 애호가의 길로 접어들지 않는다.
대부분은 처음에는 음악이 좋아 조그만 휴대용 FM라디오에서 나오는 조악한 음질의 음악을 듣고도 행복해 할 줄 아는 음악애호가로서 출발하며, 그러다 조금 더 나은 음질에서 음악을 즐기기 위하여 오디오에 취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바탕에는 음악을 사랑하는 열정이 깔려 있다. 그래서 내가 아는 한, 오디오 애호가의 99%는 동시에 진정한 음악애호가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1% 정도는 이 과정에서 안타깝게도 오디오 애호가가 아닌 기기매니아로 변질된다. (오해가 없게 하기 위하여 오디오 애호가랑 기기매니아를 구별하여 쓴다. 오디오 애호가라는 단어에는 음악 애호가의 뜻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기기에 관련된 온갖 정보매체를 다 구해 읽는 것은 물론이요, 고급오디오 판매점 한 두군데를 단골로 등록하여 끊임없이 기기 바꿈질을 해 댄다.

이른 바, 원음추구라는 고질병에 걸린 것인데 음악이 아닌 음에 집착하는 이 병은 치료가 어려운 난치병이며, 끝없는 기기 바꿈질과 어떻게든 원음에 가까이 도달하고자 하는 집착증세를 보인다. 그렇다고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오디오평론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전기/전자공학적인 지식이나 극히 미세한 음의 차이를 가늠할 수 있는 귀를 가진 것도 아니고,, 대부분은 그 영역에 도달할 수 있는 민감한 절대음감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차츰 주위에 오디오매니아(?)로 소문나기 시작한다.
자, 이쯤되면 기기를 파는 입장에서는 이 사람들을 단골손님 정도가 아니라 만만한 초 VIP로 모시게 된다.
새로운 고급 기기가 입점될 때마다 서로 경쟁하듯이 전화로 알려주는 것은 물론이요, 원하면 집까지 싣고와서 설치부터 철수까지 알아서 다 해준다. 물론 일정기간 무료사용 기회의 특혜를 주는 것이다. 그러다가 구입해 주면 좋고 구입을 안해도 군말없이 철수해 간다.
 굳이 팔아 먹지는 못해도 판매자들은 이 사람들의 입을 위한 홍보 효과를 충분히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이 기기매니아는 집에 손님들을 초대할 때나, 밖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나, 자기 집의 기기가 얼마나 원음에 가까운 소리를 내는지, 가격대비 얼마나 우수한 제품인지 입에 침을 튀기며 선전한다. 음악 이야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어쩌다 고급기기라도 들여놓고 집에서 손님접대라도 하는 날에는 거의 1분마다 음악 CD들을 바꿔가며 음악은 듣지 않고 기타소리가 곁에서 치는 것 같다는 둥...피아노 소리가 얼마나 영롱하냐는 둥...우퍼에서 나오는 베이스의 울림에 거실의 유리창이 부르르 떨리는 것에 감격해 마지 않으며 자기가 마치 음악의 전문가가 됐거나 아니면 궁극의 소리라도 얻은 양, 착각의 즐거움 속에 빠지는 것이다.
서론이 길어졌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할까?
블로그가 점점 뜨니 나를 독서애호가가 아니라 만만한 책 매니아쯤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사람 잘못봤다.

나는 공짜로 준다고 덥썩 받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흥미를 느끼지 않는 책은 일방적으로 제공한다고 해서 받지도 않고 읽지도 않는다.
앞서 올린 몇몇 책들도 다 합의하에 내가 좋아서 선택한 것들이다.
더구나 어릴 때부터 싸래기 밥을 많이 먹어 마음에 없는 소리를 잘 못하니 그런 나에게 일방적으로 아무 책이나 한 권 던져주고 아름다운 리뷰를 기대하면 큰 오산이다.
 
독서가와 책 매니아는 글 쓰는 분위기부터가 다르다.
책 매니아(?)의 블로그에 가 보면 소박하고 진솔한 독후감이 없다. 대신에 ...............???..............(상상에 맡긴다).
말이 좋아 책매니아지 실상은 출판사 홍보대사에 가깝다.

아무리 오디오가 탐이 나도 음악애호가는 끝까지 음악애호가로 남는 것이 좋다.
라디오로 음악을 듣건, 공연현장에서 라이브로 듣건, 고급오디오로 듣건 간에 음악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책도 마찬가지이다. 독서가는 독서가로 남는 것이 좋다. 대신 출판사 홍보대사가 되는 순간, 그는 타락한 장사꾼일 뿐이다.

어차피 나는 일 년에 기껏해야 100권 미만의 책 밖에 읽지 못한다 (일년에 수백 권의 책을 읽어내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다 특별한 비결로 인한 정독이라고 주장하나 나는 절대로 믿지 않는다).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남아있는 권수는 점점 줄어들게 마련이다. 어떻게 아무 책이나 읽을 것인가..?

나는 자질도 없고, 시간도 없지만, 그런 기회가 온다 하더라도, 책 몇 권이나 얼마 안되는 금품에 눈이 멀어 마음의 소리를 못내는 바보짓을 하느니 차라리 영혼을 살 찌우는 소박한 독서애호가의 자세가 더 좋다 !


Posted by 소박한 독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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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Ding 2010.07.11 12: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아하지 않는 책을 읽는 것보다 괴로운 일이 또 있을까요.. ㅎㅎ
    전 소박한 게이머로 남겠습니다. ^^

  2. 설보라 2010.07.11 1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존경하는 확실한 이유! 흔들림이 없는 자기주관이 뚜렷하신것,
    생각의 깊이와 그것을 나누어 공감대를 형성해 주시는것,
    그리고 뭔가 생각을 하게 만드는 필치~ 저의 **님으로 모십니다.^^
    오늘 비 오는날의 휴일~ 즐건 시간 되시길 바래요!!!

  3. ★안다★ 2010.07.11 13: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누군가 달빛님의 순수한 독서 열정을 불순한 의도로 건드렸나 봅니다^^
    누굽니까...소박하지만 깊이있는 독서가 달빛님의 자존심을 건드린 사람이...!!!
    앞으로도 살찌워진 영혼으로부터 멋진 글을 포스팅 해 주실 달빛님을 방해하지들 마시지요~^^
    화 식히시고 즐거운 휴일 보내시는 달빛님 되세요~^^(멋집니다...짝짝짝)

  4. 연필 한다스 2010.07.11 13: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박하지만 달빛님의 고집이 느껴집니다. 저는 그렇지 못하지만 충분히 고개를 주억거립니다. 지금으로서는 글에서 지칭하신 '독서 매니아'라고 할 수 있겠네요. 독서 야망이 높죠. 실은 아무 책이나 보는 편입니다. (제 선택에 대한 신뢰도가 낮다는 뜻이죠~) 하지만 '아름다운 리뷰' 만큼은 지양해야지요. 실은 편협했던 독서이력을 성토하는 '반성적 독서'입니다. (의외의 보물을 많이 찾습니다.) 생각 많이 하고 가요.

    • 소박한 독서가 2010.07.11 14: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연필한다스님, 의외의 말씀을 하시네요..^^
      진솔한 글들 많이 보고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책매니아는 아니고 독서가이십니다^^ 다양하게 읽는 것은 좋은 것이죠. 그리고 저도 그렇게 할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답니다..좋은 하루 되세요~

  5. 무바 2010.07.11 20: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적절한 비교십니다. 소박한 독서가가 되기 위해서 부담없는 독서에 대한 꾸준한 열정이 필요한것 같습니다.
    전 독서 매니아인지 독서 애호가인지 아직 판단이 안서지만. 책에 몰입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행복인것 같습니다.
    좋은 글 읽다 가요. 편한 주말 보내시길.~

  6. 티비의 세상구경 2010.07.11 22: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년에 기껏해야.. 100권미만 읽는다고 하시면...
    저처럼 책안읽는 사람들은 어쩌라구요 ㅠ 반성하고 갑니다. ^^;
    주말 마무리 잘하시고~ 기분좋은 저녁되세요 !

  7. 드래곤포토 2010.07.11 22: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주관이 뚜렷하신 분이네요
    존경스럽습니다.
    새로운 주를 기분좋게 시작하세요 ^^

  8. yemundang 2010.07.12 1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소박한 독서가이고 싶습니다.
    저야말로 한달에 3~4권 겨우 읽고 있는데요, 1년으로 치자면 많아야 50권이겠죠.
    제가 신간출간을 앞두고 이벤트를 생각하면서 고민하는 부분이 기존의 서평이벤트가 '책매니아'를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에요. 제가 글을 읽어봐도 딱 보면 이벤트 응모인지, 진심인지 알겠는데, 다른 분들이야 말해 뭐하겠어요.

    소박한 독서가들의 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싶고,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
    지난 2월인가요, 연필한다스님께서 이 문제에 대해 깊게 고민하신 적이 있어서, 그 때부터 생각하고 있었죠.

    • 소박한 독서가 2010.07.12 14: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예문당님, 아이 키우시랴..블로그 하시랴..50권만 해도 엄청난 독서시네요..100% 공감하고 있습니다. 괜히 연필한다스님에게 오해나 산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누구를 지칭해서 한 말도 아니고 또 그 분은 제 글과 전혀 상관없으시니 혹시라도 언짢아 말라고 전해 주십시오^^ 좋은 하루 되세요~~

  9. 2010.07.12 1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0. 국제옥수수재단 2010.07.12 14: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박하지만 멋진 글이네요^^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게 하나있다면
    우리가 많은 부분들에서 그 본질을 잊고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때가 이따금씩 있습니다..
    정말 와 닿는 글..잘읽었습니다^^
    저도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하지만
    짬이 생기는 시간에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책읽기 입니다..다 읽고 난 후
    책을 덮을 때의 그 느낌은 다른 것으로
    대신할 수 가 없습니다^^
    저도 소박한 독서가의 길을 가고싶네요^^

  11. 어설픈여우 2010.07.12 15: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호! 또 누가 달빛님의 심기를 건드렸나봐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