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자이신 고종석님이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10개를 소개한다.
(출처 : 말들의 풍경)


가시내

고종석님은 말하길, 가시내는 계집애의 서남방언이며 따라서 규범 한국어가 아니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서정주의 시에서 드러나듯이 적어도 순애와 애욕의 표현에 관한 한, 표준어인 계집애가 도저히 따라 잡을 수 없는 정서적 소구력을 키웠다고 얘기한다.

가시내두 가시내두 가시내두 가시내두
콩밭 속으로만 작구 다라나고
울타리는 막우 자빠트려 노코
오라고 오라고 오라고만 그러면 - <서정주의 입마춤>

 
서리서리

동사 '서리다'에서 파생된 부사어.
서린다는 것은 '(국수나 새끼 따위를) 헝클어지지 않게 빙빙 돌려서 포개 감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서리서리'는 포개어 감기는 모양과 관련된 부사어이다.

이 서리서리를 사랑의 부사로 만든 사람이 황진이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어
춘풍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 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피리라.

그녀는 밤을 한토막 돌려서 포개 잘라내어 이불 속에 넣어 두었다. 사랑하는 님이 오면 구비구비 펴기 위해서...


그리움

그리움은 결핍의 정서적 표현이다. 따라서 모든 사랑의 시는 그리움의 시다.
사랑은 결핍과 부재의 상태에서 가장 격렬하기 때문이다.

아! 그립다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꿈에서나 아득히 보이는가 -<김영랑의 내마음을 아실 이>

'그립다' 생각하면
'그립다' 생각하는 아지랑이 -<서정주의 아지랑이>

그리움은 빈데를 채우려는 마음의 움직임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기다림이라고 부른다.


저절로

저절로는 인텔리전트 빌딩의 작동 원리다. 따라서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키는 하이테크의 부사다.
하지만 그것은 자연의 공간이기도 하다.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산山 절로 수水 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이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절로 -<16세기 문신 김인후의 작품>

'저절로'는 애씀이나 집착을 넘어선 마음의 가장 높은 단계이며, 인위와 자연을 동시에 품고 있다.


설레다

설렘은 마음의 나풀거림이다.
이 설렘이 없다면 삶이 얼마나 권태로울 것인가.
그것은 생의 밋밋함을 눅이는 자극적인 양념이다.


짠하다

짠하다는 표준어이다.
그리고 안쓰러움과 애틋함을 동시에 품고 있다.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서 우러 나오는 연민의 형용사다.
 

 아내

요즘은 젊은이고 노인이고 할 것 없이 '아내' 대신 '와이프'라는 말을 많이 쓴다.
힘센 언어에서 차용된 외래어는 그 비릿한 사용 맥락에도 불구하고 우아하게 들리기 마련이지만, 이 '와이프'라는 단어만큼은 그 본적지에서와 달리 정말 천박하게 들린다.

아름다운 우리말인 '아내'라고 호칭하자~!


가을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지만 또한 쇠하여 떨어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미국 단어 가을(fall)에는 그 쇠하여 떨어짐의 상상력이 또렷하다.
성함의 끝과 쇠함의 시작이 맞닿아 있는 때가 가을이다.




넋에 대한 믿음을 지난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건은 사람들의 종교적 심성이 점점 옅어지고 있다는 뜻일 테다.
그러나 넋이 사라진 세상은 얼마나 허전할 것인가...




이 말이 아름다운 것인지, 이 말이 가리키는 물질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인지 모르겠다.
'술'의 받침인 'ㄹ'은 술의 흐름을 나타내는 것처럼 들린다.
또한, 'ㅜ'는 술은 마시는 것이라는 것을, 또 마시되 절제있게 느릿느릿 마시는 것을 함축하고 있는 듯 하다.


이상, 고종석님의 글에서 옮겨 보았다.
'말들의 풍경'은 리뷰 하나만 남겨놓고 끝내기에는 너무 아까운 보석같은 글들을 많이 싣고있는 정말 좋은 책이다.
우리말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가치를 깨닫게 해 주는 고종석님의 글을 읽어보시길 권한다.


Posted by 소박한 독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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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에버그린♣ 2010.09.06 10: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짠하다가 표준말 이었군요..
    그리고 아내라는말...제가 와이프라고 자주 쓰는데..ㅎ~
    제글의 전개상 적절히 혼합해야 할거 같습니다^^

  3. 일곱가지 이론 2010.09.06 10: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절로'의 참 의미를 이제서야 알겠되었네요.
    '저절절', '짠하다' 란 아름다운 우리말을 평소에도 자주 사용해야겠어요~

  4. 예문당 2010.09.06 10: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아름다운 말들이네요.
    짠하다.. 설레다.. 그리움.. 좋은데 역시 '아내'가 가장 좋군요. ^^

  5. 어설픈여우 2010.09.06 10: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움,설레다...이 두말의 느낌이 참 좋아요~
    그런데 짠 하다가 표준어였다는건 오늘 알았네요...

    달빛님, 주말과 휴일에는 제가 꼼짝할수 없을만큼 아팠답니다.
    그래서 저도 방문도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어요..
    건강이 최고라는 말을 절실하게 느낀 이틀이었어요~
    달빛님도 건강 잘 챙기세요~^^*

  6. 스무디아 2010.09.06 1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가시내...이말이 참 좋더라구요..
    그냥 정겹잖아요..이그 그 가시내...

  7. 쿠키가든 2010.09.06 1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설레다~~*
    소박한 독서가님 블로그를 방문 할 때마다 설렙니다^^

  8. 엔죠™ 2010.09.06 11: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주변분들이 와이프라고 부르기 보다는 아내라고 불렀음 좋겠습니다. 어감도 좋고 느낌도 좋고 ^^*

  9. ☆북극곰☆ 2010.09.06 13: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시내, 그리움, 술, 아내.... 으음...숙연해지면서 느낌이 묘하네요~ ^^
    저는 컴퓨터 고치느라 정신을 3일정도 쏙 뺀것 같습니다.
    조금씩 뭔가 이상해지더니 토요일낮에는 완전히 망가져 버렸죠.
    특별한 이상징후를 포착했는데도 불구하고... 귀차니즘에 빠져서 이렇게 더 큰일을 만들어버렸다는.. --;
    덕분에 블로그활동 제대로 쉬었습니다. ㅋㅋ

    그...그런데..........수.....숙제라 하심은?? 무엇?? ㅋ

  10. 오븟한여인 2010.09.06 13: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짠하다가 표준어군요?전라도사투리인줄알았죠..
    제가 신혼때 우리남편이 "가시나" 해서 무지울었던...
    내가욕먹을려고 저인간하고결혼했나?ㅠㅠ
    가을이네요,
    설레는게절입니다.

  11. HJ 2010.09.06 1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말 중 모르는 것들도 참 많더라구요..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들도 많구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독서가님 9월에 행복한 일 많이 만드시길 바랍니다 ^^

  12. 자 운 영 2010.09.06 13: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나빌레라~좋아해요 ㅎㅎㅎ^

  13. 노지 2010.09.06 13: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갑니다 ^^
    우리 말에는 참 좋은 뜻이 많지요. 함초롱빛..같은 ~

  14. 가을 2010.09.06 1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아름다운 우리 말 만세~~~

  15. widow7 2010.09.06 14: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내'보다는 마누라! 그러고보면 한국만큼 관직 좋아하는 나라도 드문 것 같습니다. 왕후의 명칭 마누라나 벼슬자리인 영감도 그렇고, 이젠 언니는 여자끼리만 쓰고 남자는 고구려 관직 '형'을 쓰죠. 교사 아니어도 선생님, 사업 없어도 사장님이라고 불러줍니다.

  16. 펨께 2010.09.06 18: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글은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언어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한글조차 많이 잊어버렸지만 아직도 친구사이 "가시나"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어요.ㅎㅎ

  17. 이류(怡瀏) 2010.09.07 00: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서가님 아름다운 우리말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제가 바꾼 이류라는 닉니엠도 우리말이랍니다.

    뜻은 맑은 기쁨이에요!!

  18. 마사이 2010.09.07 0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 들어도 아름다운 우리말...
    케냐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세계 주요 언어중 하나로 korean이 당당하게 기록돼 있답니다...^^

  19. 파리아줌마 2010.09.07 03: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들 넘 아름다운 우리말들입니다.
    이런 글귀들이 들어간 글을 쓰고 싶었답니다.
    기회가 오겠지요.^^

    번개 모임이 있군요.
    오늘에서야 보았습니다.
    좋은 시간 되시기를요..
    후기 올려주신다면 더 좋겠고요.^^

  20. 이야기캐는광부 2010.09.08 1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설레다'라는 말이 가장 좋습니다. 아직 청춘이다보니 마음껏 설레고 싶어요.ㅎㅎ

  21. 영글음 2010.09.09 04: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입으로 따라해봐도 발음이 예쁜 것들이 많네요. 우리 말이 참 예쁜데 요샌 우리말만 가지고는 대화가 안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