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국문학과 명예교수님이신 故 서정범 교수님께서 타계하신 지 만 1년이 됐다.
나는 경희대 출신도 아니고 그 분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작년 그 분의 타계 소식을 접하고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바로 그 분이 써내신 14권에 달하는 별곡시리즈 책 때문이다.

별곡시리즈가 뭐지?
모르시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아서 간단히 소개한다.

별곡시리즈는 교수님이 대학생들의 속어를 연구하여 매년 한 권씩 출간했던 책을 말하는데, 그 안에는 한 해동안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거의 모든 유머와 수수께끼등은 물론, 국문학자로서 분석한 유행어의 변천사 및 어원등에 대한 해설까지 자세히 덧붙여 놓아서 단순한 유머책 이상을 넘어 사회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까지 부여되었던 책들을 말한다.





시리즈물의 2권째인 어원별곡의 머리말을 보면 교수님이 왜 이런 작업을 결심하게 되었고 꾸준히 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다.

여기에 수록된 글들은 그동안 조어 제구와 어원을 밝히기 위한 기초 작업의 과정에서 얻어진 것들이며, 특히 문화방송 TV에서 매주 목요일 <우리말을 압시다>란 시간에 방영하던 내용을 일부 수록하였다...(생략)...나는 조어의 제구와 어원 탐구도 결국은 인간 해석의 한 가지 방법이라고 여긴다...(생략)...아울러 조어 제구와 어원 탐구는 우리 민족의 뿌리와 말의 뿌리, 그리고 정서의 뿌리를 이해하는데 그 어느 것 보다도 확실하고 강력한 것이라 하겠다....(생략)...우리 민족의 언어적인 정서를 확인하는 작업이라고 여기고,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 어원별곡 머리말 중에서.

이 책을 단순한 유머책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실제로 어원별곡을 펼쳐보면 거의 2/3 분량이 어원에 대한 에세이식 논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너무 분량이 방대하니 그 중에서 이웃님들이 알아두면 좋을 것 같은 내용 하나만 소개한다.




우리말 <아름답다>의 어원은 매우 깊은 뜻이 있습니다.
<아름답다>의 <답다>는 접미사가 되고 <아름>은 명사로서 <나>, <내 것>의 뜻을 지닙니다.
<아름답다>는 <나답다>, <내 것답다>의 어원을 지닌다고 하겠습니다.
아무리 곰보일지라도 서로 사랑하게 되면 그 오목오목한 데마다 사랑이 샘솟듯 퐁퐁 솟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 사람, 내 사랑이기 때문에 곰보의 얼굴도 예뻐 보이는 것입니다.
<아름답다>라고 하는 것은 나 아닌 것을 나답게 여기는 것입니다.
곧, 나답게 여기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 됩니다.

출처 : 어원별곡 228 페이지


나는 이 책의 전권을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
억억, 철렁, 거덜, 너스레, 어원, 빼빼, 가라사대의 총 7권만 가지고 있다.
작년 교수님의 타계 소식을 접하고 빠진 책 나머지 7권을 구입할려 인터넷을 샅샅이 뒤졌으나 이미 절판된 지 오래..
진작 사 놓을걸 하고 후회했지만 이미 늦은 일...
언젠가 다시 복간이 되면 제일 먼저 구입할 생각이다.

이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은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한 해동안 한국사회에서 유행되었던 모든 속어와 유머, 수수께끼가 총집합된 책이라 상당히 재미있는 부분이 많다.
나는 두고두고 꺼내 읽으며 외우기까지 한다. 왜?
어딜가나 화제가 떨어지지 않고 분위기 메이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이 잊어 버렸지만 한참 이 책을 열심히 외우고 다녔을 때는 술좌석에서 유머에서 나를 이기는 사람을 그다지 많이 보지 못했었다.
틈틈이 외운 몇 가지의 유머만 해도 술좌석의 나머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모든 유머를 합친 것의 몇 배는 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단순히 유머만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유머의 변천사와 어원 공부를 같이 하기 때문에 같은 유머를 해도 그 격이 달라지게 된다.
실제로 나보고 유머를 연구하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 분이 정리하여 놓으신 수많은 재미있는 이야기들 중에서 맛배기로 유머 몇 가지를 소개한다.
물론 지나간 유머들이라 아시는 분들도 많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나마 덜 알려진 것들을 골라서 몇 개만 올려 본다.

아무리 반대해도 우린 결혼해야 해요. 요즘 세상에 당사자들끼리 좋으면 그만이지 집안의 반대가 무슨 소용이예요.
난 자기와 절대로 헤어질 수 없어요. 아무리 반대해도 난 자기만 믿어요. 도대체 집안에서 누가 우리 사이를 반대하는거예요
"마누라가"

TV시청권을 놓고 부부가 옥신각신했다. 
경상도 남편은 뉴스를 보겠다고 채널을 돌리고 부인은 드라마를 보겠다고 채널을 돌려댔다. 
그러다가 채널이 잘못 돌아가 화면에는 바야흐로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팔등신 미녀들의 수영복 심사 즉 미스유니버스 대회가 중계방송되고 있었다. 
경상도 남편은 신혼 첫날밤에 부인을 보던 초롱초롱한 눈빛을 재현해 내며 침을 질질 흘리며 화면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화가 난 부인이 철 지난 수영복을 장롱을 뒤져 찾아내 갈아입고서 TV 화면을 가리며 포즈를 취했다. 
이에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가 하는 말,
"야, 니도 꽤 볼륨 있네."
이 말에 부인은 신이 나서 옆모습을 보여주려 애썼다. 
그러자 남편이 하는 말,
"궁딩이 엄청시레 튀 나왔네. 변기 않을 때 살살 앉그라.깨지것다."

웃음의 종류
남자가 여자 앞에서 : 喜喜喜
여자가 남자 앞에서 : 好好好
사장이 사원 앞에서 : 下下下
점장이가 손님 앞에서 : 吉吉吉
노총각이 가을에 : 虛虛虛

순대 파는 아줌마는 혀가 짧아서 ´ㅅ´ 발음을 못하고 ´ㄷ´으로 발음했다. 
학생 : 이 순대 얼마예요?
아줌마 : 오딥 원이야(오십 원이야).
학생 : 뭐라고요?  얼마라고요?
아줌마 : 오딥 원이라니까 그러네
학생 : 뭐라고요 ?
아줌마 : 디길 놈아 오딥 원(죽일 놈아 오십 원).

출처 : 미리내 문학관
 


학원별곡을 시작으로 저자가 십여 년에 걸쳐 수집하여 놓은 한국의 해학들을 더 이상 못보게 되니 아쉬운 마음 금할 수 없다.
그동안 꾸준히 책을 발행한 저자가 10권째인 너덜별곡을 펴내며 머리말에서 그동안 학생들의 풍자와 유머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바를 밝힌 것이 있다.

이러한 면에서 학생들의 속어모음인 별곡은 사회를 밝게 하고 부정과 비리를 날카롭게 풍자하고 비판하여 사회를 정화시키는 작용을 일부나마 했다고 여겨진다. 더구나 학생들의 욕구불만을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웃음과 재치로 승화시키려는 학생들의 건강한 사고에 갈채를 보낸다. 
속어는 그 사회의 민감한 반영이기 때문에 여기에 수록된 자료는 사회학적인 면에서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고 하겠다.

전적으로 동의하는 말이며 교수님의 노력에 감사를 드리며, 부디 하늘에서도 평안하게 영면하시길 바란다.

서 교수님의 공식 사이트 : http://www.mirinae1967.net/

     


Posted by 소박한 독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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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ikuru 2010.09.23 07: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별곡 시리즈라..제목만 봐도 재밌어 보이는 책이군요..

  2. DDing 2010.09.23 07: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 민속에 대한 연구도 많이 하시고 진짜 학자라는 생각이 들었던 분이었죠.
    공부는 안하고 다른 일에만 몰두하는 가짜 교수들이 판치는 요즘에 귀감이 되는 분입니다.

  3. 어설픈여우 2010.09.23 07: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티비나 방송을 통해서 고 서정범 교수님의 말씀을 듣게되면 얼마나 감칠나게 표현을 잘 하셨는지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웃음의종류응 이미 서교수님께서 저렇게 분류 하셨었군요~

    달빛님의 포스트 덕분에 서교수님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는 기회를 가져봅니다.

  4. 티비의 세상구경 2010.09.23 08: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렇게 재미있는 책들인데 지금까지
    한권도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네요 ^^;

  5. 무릉도원 2010.09.23 08: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참 좋아했던 교수님이었습니다...
    TV에 나와서 말씀하시던 특유의 어감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잘 보고 갑니다....행복한 연휴 되세요...*^*

  6. 카타리나^^ 2010.09.23 09: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어본적이 없는 책이네요
    어떤 책인지 나중에라도 기회되면 봐야겠어요

  7. 온누리49 2010.09.23 09: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 갑니다
    개인적으로는 교수님과 함께 긋판을 전전했던 나이기에
    마음이 더 울적하네요
    교수님의 영면을 머리숙여 빕니다

  8. 강 같은 평화 2010.09.23 09: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정범 교수님 원래 유명하셔서 익히 이름을 들었어요. 이글을 보니 더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독서가님도 대단하시구요.^^

  9. 다소미아 2010.09.23 10: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TV화면으로 자주 접했던 분이신데,,
    독서가님의 글을 보니, 그 때의 기억이 다시 생각나네요..
    고인은 가셨지만, 당신께서 남기신 흔적들은 영원토록 후대에 알려졌으면 하네요..

  10. 여강여호 2010.09.23 10: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정범 교수...이 분만한 국문학자가 없었는데....요즘도 가끔 생전에 모습을 tv에서 볼 때마다 노학자의 열정에 절로 옷깃이 여며지더군요...잘 읽고 갑니다....연휴 마무리 잘 하시구요

  11. 또웃음 2010.09.23 11: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책인데요. 소장 가치가 있어보여요.
    학생들과 공부할 때도 좋은 자료과 될 것 같고요. ^^

  12. 일곱가지 이론 2010.09.23 12: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 구하기가 쉽지 않겠네요...
    헌책방에 갈때 찬찬히 찾아봐야겠어요~

  13. 새라새 2010.09.23 13: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워낙 무지해서 모르는 분인데..
    소박한 독서가님덕에 이런 훌륭하신 분을 알게 되었네요..고인의 명복과 함께..
    저도 조금 관심을 가지고 서정범 교수님 도서에서 배움을 얻어야 겠네요^^
    추석은 잘 보내셨는지요..소박한 독서가님^^

  14. 하결사랑 2010.09.23 14: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목들을 보니 언젠가 서점에서 들었다 놓았다 한 책들도 눈에 띄네요.
    모두 같은 저자분인지는 몰랐네요.
    조리하는 동안 책 많이 읽어야 겠다고생각했는데 별곡 시리즈도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

  15. 이류(怡瀏) 2010.09.23 17: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여러가지 책들이 있는데 전혀 몰랐네요~

    독서가님 감사합니다 ^^

  16. 백전백승 2010.09.23 18: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부는 아니어도 서점에서 둘어보아 있는지는 살펴보아야 겠어요. 서귀포는 서점이 작아 아마 없을 것 같아요.

  17. 늘푸른 2010.09.23 19: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잘 모르겠지만
    귀한 발자취를 남기신 분인것 같습니다.
    오늘도 평안하세요.

  18. 엔죠™ 2010.09.25 17: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그 유명하신 서정범 교수님께서 타계하셨군요..

    그래도 그분의 흔적과 작품은 길이 남을 듯 합니다...!!

  19. 마사이 2010.09.26 03: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름답다의 어원이 나답게 여긴다는 거였네요....
    남을 나답게 여기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는 뜻도 되겠네요....
    우리말 너무 아름답습니다....^^

  20. 독자의 한사람이 2011.10.24 19: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서정범 노교수님이 타계하셨다는 기사를 오늘에야 확인합니다. 정말 덕망과 학술이 대단하신,
    우리나라의 몇안되는 큰교육자이신데.....ㅠㅠ.
    늦게나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