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적은 아니나 요즈음 두꺼운 책을 자주 읽게 된다.
체 게바라 평전도 무려 714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양이라 아침 저녁으로 독서를 했음에도 5일 만에야 간신히 독파했다.

다행이었던 것은 평전이라고 해서 딱딱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술술 읽힐만큼 흥미로웠고 체가 포로로 잡혀서 사살되는 마지막 장면에서 나의 독서의 감동은 절정에 달했다.

'그 시대의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고 사르트르가 표현했고 처음부터 혁명의 전 과정에 같이 몸담았던 피델 카스트로 또한 '체 게바라 만큼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벽하게 해낸 사람은 없었다'고 극찬했듯이 체 게바라는 최고의 전사였던 동시에 지도자였고 전사 그리스도라는 별명에 걸맞는 휴머니스트였으며 독서로 다져진 빛나는 지성인의 한 사람이었다.

엄정한 규율과 조직,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는 전우애, 평등의 신조를 자신의 신조로 끝까지 밀어붙인 신념가.
'생각하는 인간으로서 행동하되 행동하는 인간으로서 생각하라'는 베르그송의 멋진 말을 몸으로 실천한 혁명가.
의사이자 시인, 고고학자로서의 정적인 직업을 버리고 신념의 관철을 위하여 굳이 남의 나라까지 가서 숱한 죽음의 가시밭길을 넘나들며 혁명을 도운 타고난 게릴라.

저자는 이 책에서 10년 가까이 수집한 풍부한 자료들을 적절히 사용하여 체의 일생을 거의 완벽하게 재조립해 냈다.
그의 글이 더욱 빛나 보이는 것은 그의 혁명이나 전사로서의 역량, 혹은 이념만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역자의 표현대로) 그의 일생을 마치 한 편의 아름다운 소설같은 논픽션으로 완성해 냈다는데 있다.

실제로 그가 가족들과 주고받은 수많은 편지들과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입을 통하여 듣는 에피소드등의 많은 인용을 통하여 작가는 그의 따뜻한 인간미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쿠바로 들어가 외국인으로서 혁명의 선봉장으로, 사랑의 전도사로 유감없이 자신을 드러낸 체는 과연 죽을 때도 보통사람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비범함을 지니며 자기를 체포하고 사살해야 하는 볼리비아군에게까지 감명을 주게 된다.

그의 마지막 장면을 잠깐 인용한다.

10시경, 체를 없애라는 명령이 라이게라에게 전달된다....(중략)...그들은 마리오 테란을 선택한다. 테란은 차분히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던 체를 일으켜 세운다. 하지만 테란은 자신이 임무를 완수할 수 없으리라는 두려움에 사로 잡힌다. 그때 체는 그가 일을 끝낼 수 있도록 격려한다.
"쏘아, 겁내지 말고! 방아쇠를 당겨!"
군인은 몸을 떤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말한다.
"그의 눈이 강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매혹당했습니다. 나는 크고 위대한 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수 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피델 카스트로에게서 "게릴라전을 예술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린 인물"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대장으로 진급을 명령받았을 때 체가 말한 소감이 이채롭다.
"누구에게나 내재해 있는 자신감은 제때를 만났을 때 완전히 발휘된다. 이 일로 인해 나는 세상에서 가장 잘난 인간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라고 토로했다.


"병사들은 자신을 알아주는 장수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라는 격언이 체 게바라에게도 적용이 되는 순간이었다.

피델의 요청으로 셀리아 산체스는 특별히 준비해 온 대장의 별 계급장을 꺼냈다.

금박이 둘러진 작은 별은 쿠바혁명의 아버지인 호세 마르티의 별과 같은 모양이었다.
체는 얼른 그 별을 챙모자 대신에 쓰게 된 베레모 위에 달았다.
이 모습은 1960년 3월 5일, 일베르토 코르다가 아바나에서 찍은 유명한 사진으로 두고두고 남을 것이었다.

전사로서, 부대내에서 가장 양초를 많이 소비하는 독서 습관으로 다져진 철저한 이론가로서, 적이건 아군이건 가리지 않고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지키는 의사로서, 가는 곳마다 농민들과 힘없는 사람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게 되는 체.

외국인 전사라는 약점때문에 듣는 비아냥을 이기고 진정한 쿠바혁명군의 지도자로서 거듭나는 그의 드라마틱하고 영웅적인 일생.

이 책이 아니었다면 쿠바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한 명의 유명한 게릴라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체 게바라의 진면목을 어디서 알았을 것인가.
오랫만에 가치있는 인물의 평전을 읽은 보람있는 독서시간을 보낸 것 같다.

마지막으로 체가 혁명에 성공하고 난 후, 국립은행 총재가 되는 재미있는 일화 하나를 소개하고 짤막한 독후감을 끝낸다.

혁명이 성공하고 난 후, 국립은행 총재가 된 에피소드가 재미있다.
어느 날, 측근들이 모인 자리에서 피델 카스트로가 물었다.
"이 방에 경제 전문가가 있소?"
그러자 한 사람이 손을 번쩍 들었다. 체 게바라였다.
"좋아, 그렇다면 지금부터 자네가 국립은행 총재네."
체 게바라는 어안이 벙벙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는 " 이 방에 공산주의자가 있소?"라고 묻는 줄 알았다는 것이다.

(경제전문가인 'economista'를 공산주의자인 'communista'로 알아 들었다는 얘기-옮긴이)


Posted by 소박한 독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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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제너시스템즈 2010.12.21 1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와 같은 책을 가지고 계시네요^^ 저는 개정판이 아니라서 표지는 조금 다르지만 같은 책을 가지고, 읽은 분을 만나면 괜히 반갑습니다. 저는 체 게바라 평전을 읽을 때 길고 어려운 이름이 계속 나와서 읽기가 힘들었지만 내용의 흡입력은 여느 소설책보다 컸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체 게바라는 꿈꾸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지금 여기에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를 생각하곤 했어요^^

  3. 벨제뷰트 2010.12.21 11: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짜 영웅 중에 영웅입니다. 체게바라의 이름은 영화를 통해 처음 듣게 되었지요.
    알파치노가 출연했던 스카페이스.

  4. 여강여호 2010.12.21 11: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체....그가 젊음과 낭만의 상징이 될수밖에 없었던 이유........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래 전에 읽어서 항상 다시 읽어야지 하고 책꽂이 맨 앞에 두곤 합니다. 하지만 아직.....즐거운 하루 보내십시오

  5. ♣에버그린♣ 2010.12.21 12: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 이웃님 서평으로 조금 이나마 알고 있었네요~
    서평도 자주 보니 조금씩 내공이 샇인다는.. ㅎㅎ
    물론 작접 읽는거에 10%도 못미칠태지만, 안본것 보단 난거 같습니다^^

  6. Yujin 2010.12.21 13: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두꺼운 책도 5일만에 간파하시는 소독님~~
    카스트로가 얼마나 그를 믿었으면 손을 든즉, 경제총재에 임명했을까요...ㅋㅋ
    이~~코뮤니스트^^

  7. 코엑스에서 2010.12.21 1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침 체게바라 코르다사진전을 하고있데요
    참고용~ kordaphoto.co.kr

  8. 달콤시민 리밍 2010.12.21 14: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훌륭한 인물인건 잘 알고 있는데
    책을 읽는건 왜 그렇게 힘이 들었는지^^;
    포기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다시 읽어보게 도전해봐야겠습니다^^;

  9. 굴뚝 토끼 2010.12.21 14: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념과 체의 사후 현재까지 쿠바의 모습을 떠나,
    지식과 행동이 일치하는 모습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 받는 인물이라고 생각됩니다.

  10. HS다비드 2010.12.21 15: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체게바라에 대해서 잘 몰랐는데 소박한 독서가님 덕분에 어느 정도 알고 갑니다^^

  11. 2010.12.21 17: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2. 하결사랑 2010.12.21 18: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이 책은 너무 어려웠어요.
    정말 솔직히 몇 페이지 읽다가 그만 덮었던 기억이...
    그 뒤로 다시 펼쳐보지 않았다는...너무 자극적인 책만 읽나봐요.
    제가...그런데 좀 후회 되는게...혼자일때 이런 책을 많이 볼 걸 했어요.
    지금은 좀 진지한 책을 읽을 수가 없어요. 집중 할 시간이 너무 부족해요 ㅠㅠ

  13. 아빠소 2010.12.21 19: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체게바라는 참 많이도 인용되고, 소개되는것 같습니다. 평전이 꽤 어려울듯 싶어 전 엄두도 못내고있는데
    재밌게 읽으셨군요~ 독서가님이 읽는 책은 주로 대중적이지 않고 문학적인 가치가 있는 책들을 많이 보시던데
    어찌 매일매일 포스팅을 하시는지 고개가 절로 흔들어집니다~ 대단하세요..

  14. 비바리 2010.12.21 19: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읽어야지..하면서 여즉 뒤로 미루고만 있어용~~
    내년으로 넘겨얄듯 합니다.
    좋은서평 잘 보았습니다.

  15. 일곱가지 이론 2010.12.22 01: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군시절에 젬나게 읽었던 책이에요....
    빨간 책표지가 맘에 무척 들었죠....
    군대에서 빨간색 책을 읽는 다는 것도 재미있었구요..ㅋ.ㅋ

  16. 자 운 영 2010.12.22 02: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독서가님이 5일동안 흠뻑 빠질만한 책였겠네요
    쿠바혁명가이자 휴머니스트여서 더 가슴에 와닿으네요^
    오흥 재밌는 에피소드 한끗발 차이 발음 ㅎㅎ
    야밤에 다녀 갑니다 ㅎㅎ^

  17. 이야기캐는광부 2010.12.22 03: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체게바라. 젊은 시절의 심장을 뜨겁게 채워주는 인물. 참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평전 전에 읽은 적이 있지만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18. 마사이 2010.12.22 15: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19. 파리아줌마 2010.12.22 19: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체 게바라라는 인물에 대해 더욱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참 아까운 인물인데..
    너무 일찍 저세상으로 가버렸어요,ㅠㅠ

  20. 플린 2010.12.22 2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몇년 전만 해도 그를 몰라도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그를 조명하고 티셔츠에새겨넣었죠. 무려 700페이지가 넘다니 제대로 조명했군요. 예전에 도서관에서 체가 쓴 시집을 접한 적이 있어요. 그 시집은 어떤 시집보다 치열하면서도 아름다와서 혁명가는 온데 간데 없고 아름다운 인간만 오롯이 있더라구요. 그는 세상에 없지만 두고 두고 지켜봐야할 인간이에요.

  21. 박희욱 2012.03.17 16: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는 인간을 사살하는 것을 취미로 한 사디스트였습니다.
    그가 한 일은 성경을 들고서 잉카왕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설교하면서,
    피사로에게는 그를 처형할 것을 끝까지 주장한 바르베르데 신부를 연상시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