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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독후감

의심하는 사랑의 비극적 결말, 어떤 여자

by 소박한 독서가 2010. 12. 30.



문학과 지성사에서 펴낸 대산세계문학총서 091편이며 내가 읽은 두 번째의 대산 작품이다.

얼마전 어느 신문에 대우학술총서와 대산세계문학총서의 각 600권과 100권 돌파를 기념하는 칼럼이 실렸다.
그 칼럼에서 말하기를 (대우학술총서는 일단 논외로 하고) 문학적 깊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상업성이 떨어져 대중들에게 인식되지 못한 작품들을 널리 알리고자 기획하여 펴낸 시리즈가 대산세계문학총서인데 그동안의 각고의 노력 끝에 이제 100권을 돌파하게 되어 축하한다고 쓰여 있었다.
또한 대산세계문학총서 덕분에 우리나라에서 읽을 수 있는 작품의 저변이 괄목할 만하게 늘어났다는 이야기도 쓰여 있었다.


칼럼에 실린 이야기때문이 아니라 나 또한 얼마전에 독서한 동 시리즈의 <위험한 관계>를 읽고 감동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이며 집어든 책이 이 작품, <어떤 여자>이다.

만나는 남자마다 자기를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여인.
자기를 흠모하는 남자들을 어떤 방법으로던 자기 곁에 붙들어 두고 싶어하는 여인.
그러면서도 정작 자기는 마음을 주지 않고 모든 남자들이 자기를 우러러 봐야 만족하는 여인.

그런 여인이 드디어 진실한(?) 사랑을 만났다...그리고 비극은 시작된다!

이 작품은 한 때는 진실한 기독교인이었으나 형식적인 윤리의 틀에 질려 반항적인 본능에 따라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는 한 여인의 비극적 운명을 그리고 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이 작품이 실화를 토대로 쓰여졌다는 것이다.
작가가 미국 유학을 떠나기 전인 1902년에 일본에서 일어난 떠들썩한 사건이었다.
한 이혼녀가 미국에 있는 약혼자를 만나기 위해 탄 여객선에서 유부남인 사무장과 사랑에 빠져 미국땅을 밟아 보지도 않고 귀국한 사건이다.

독서의 재미를 반감시킬까 싶은 우려심에 자세한 소개는 하지 않겠지만 이 작품은 당시의 실화를 거의 베끼다시피 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나중에 꼭 그렇지는 않다고 변명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책을 다 읽고 역자후기를 봤지만 여러분은 원활한 독서를 위하여 책을 읽기 전에 역자후기를 먼저 읽기를 권한다).

이 책의 주제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뭐라고 할까...
서로를 끔찍이 사랑하면서도 표현할 수도 믿을 수도 없는 채로 쓸데없는 의심과 불만에 가로막혀, 어느덧 길가에서 스쳐가는 사람처럼 멀어져 가야만 하는 남녀?
아마 정답은 아닐지언정 비슷할 것 같기는 하다.


실제로 책의 전반에서는 사건 전개를 위한 외형적인 묘사가 주를 이루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망가져 가는 여주인공의 심리묘사 비중이 늘어난다.

모든 사람들이 뒤돌아 볼 정도의 아름다운 미모에서 받쳐주는 도도한 기질의 여인이 불같은 사랑을 시작했다가 1년도 못가서 광적인 질투심과 근거없는 시기로 파경에 이르는 과정과 비극적 종말에 이르는 심리적 변화 과정이 후반부로 갈수록 너무나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하는 남자가 자기의 어린 여동생과 비밀스런 사랑을 몰래 나누고 있지 않나하는 의심으로 철저히 망가져 가는 여인의 심리는 이 작품이 정신분석을 다룬 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 묘사가 사실적이다.


상대방을 향한 배려심과 이해가 있었다면 해피엔딩으로 끝났을 수도 있었을 사랑이 (스파이 활동을 한 남자의 일시적인 잠적으로 야기된 어쩔수 없는 물리적 이별은 고려하지 않기로 한다) 스스로의 시기와 의심으로 허물어져 가는 과정은 안타깝기까지 하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여기에 관한 역자의 말을 소개하며 짧은 독후감을 마친다,

기존의 가치관과 정면대결을 벌이는 여주인공 요코의 파란만장한 삶을 리얼리즘과 휴머니즘의 적절한 혼합에 의해 섬세하고 리얼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개인의 행복보다 가문의 명예를 중시하는 가족제도에 대한 비판, 남성 중심의 사회에 대한 고발, 형식에만 사로잡혀 순수한 신앙심을 짓밟는 교회에 대한 도전등을 포함하고 있어 일종의 사회소설적인 성격을 띤 작품이기도 하다.

사랑에 빠진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의심하고 질투하지 마시길.
근거없이 의심하고 질투하는 행위는 사랑하는 상대로 하여금 나에게서 떠나가게 하는 지극히 어리석은 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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