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자고 나니 나의 사람 형체는 온데간데 없고 침대 안에 한 마리 벌레가 누워 있다.
의식은 또렷하다. 나는 사람인가 벌레인가.
의식은 사람이되 육체적 기능은 완벽한 벌레로 변한 주인공이 식구들의 태도 변화를 관찰하는 묘사력이 생생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던 가장이 어느 날 갑자기 한 마리의 벌레로 변해, 쓰레기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끝내는 아무의 동정도 받지 못한 채 쓸쓸하게 죽어간다.

<변신>은 일을 하며 돈을 벌 때는 가족의 힘있는 가장으로서 인정을 받다가, 그 능력을 상실하게 되면 가차없이 군식구 취급을 받는 현대인의 냉정한 가족생활을 극명하게 풍자한 작품이다.

문득 예전에 어느 방송에서 기자가 서울역 앞의 나이 지긋한 노숙자에게 질문하던 장면이 기억난다.
기자 : 선생님, 집도 있는데 왜 안 들어 가세요?
노숙자 : 에이..들어가면 뭐해..그냥 여기가 편해...
기자 : ....
그에겐 어떤 사연이 있길래 가족도 집도 다 버리고 매일같이 찬 땅바닥에서 잠을 잘까...

얼마전 일본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황혼이혼이 대지진의 뉴스에 묻히긴 했으나 아직까지도 그 기세를 떨어뜨리지 않고 있다고 한다.
힘이 있다고, 돈 좀 번다고 집안에서 지나치게 유세하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들이 경제적 능력을 상실하는 순간, 아내들은 그동안 당해왔던 구박에 대한 복수로 재산의 일부를 빼앗아 버리고 남편을 길거리로 내쫒는 것이다.

책이야 소설로 치부해 버린다 치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이런 기사나 뉴스들을 접하면 질문을 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 모두는 말로는 가족이 최고라고 하지만 정말은 가족은 돈을 벌어오는 수단이고 진짜 중요한 것은 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가족이 정말 가족일까?
내리사랑이라는 부모-자식간의 사랑을 뺀다면 나머지 가족들의 사랑은 정말 사랑일까?
세상의 비웃음을 감수하며 돈때문에 형제끼리, 부부끼리, 친척끼리 법정투쟁을 마다하지 않는 추악한 세상이다.
책을 읽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야 할 때이다.


소위 <명작>이라 불리는 문학 작품들을 읽다 보면 많은 책들에 공통되는 몇 가지의 주제를 느낄 수가 있다.
'사랑'과 '죽음' 그리고 '사회고발'이다.
사랑은 그냥 사랑이 아니라 悲愛이고 죽음도 그냥 죽음이 아니라 殺身이거나 자기희생이다. 그리고 이 두 주제와 맞물려 사회 고발을 하고 있는 작품들이 많다.
<변신> 또한 가족 문제를 다룬 '사회고발'성 작품이다.

'사회고발'적 성격을 띠는 작품들이 시간이 흐르며 <명작>의 반열에 오르기는 쉽지가 않다.
너무 시사적이거나 혹은 미래를 관통하며 보편적으로 적용시킬 주제를 세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며, 말할 필요도 없지만 '사랑'이나 '살신성인'같은 레벨의 숭고한 가치관을 사회고발성 작품에 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변신>은 그런 의미에서 미천한 일개 독서가의 눈으로 볼 때는 <읽기에 넘치도록 가치있는 책>이다.
그것은 서울역 앞의 노숙자들 이야기이고, 평일날 양복입고 북한산에 가는 우리 이웃 아저씨들의 모습이며, 평생을 가족을 위해서 헌신하다가 늙어서 침대에 누워 자식들에게 봉양받기를 기대하는 우리의 힘없는 아버지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양서>란 무엇인가?
책의 내용이나 줄거리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내용의 근저가 되는 사상이나, 생각, 가치관들이 독자로 하여금 올바른 방향으로 판단하고 자성하고 느끼게끔 뒷받침해 주면서, 마침내 독자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긍정적인 공감>을 얻는다면, 우리는 그 작품을 <양서>라고 부르지 않겠는가?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 커다란 화두를 던져주는 이러한 책이 양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간혹 이 책을 징그러워서 읽다가 말았다는 분들이 보이는데 정말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독서 행태라고 아니할 수 없다.
장면 하나하나를 마치 시나리오를 읽듯이 상상을 하며 읽어 보라.

그리고 다 읽고난 뒤에 나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스물스물 올라오는 나의 아버지에 대한 찡한 무엇을 느껴 보시기 바란다.
  

우리가 <명작>을 통하여 감동을 받고 좀더 높은 가치를 향하여 자기를 추스리게 되는 것은 우리 각자의 마음속 깊은 심연에는 그러한 가치들을 담을 수 있는 빛나는 그릇이 숨겨져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p.s.) 민음사판에 같이 실려 있는 <시골의사>의 독후감은 생략합니다.


Posted by 소박한 독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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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빈배 2012.03.04 1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족이 돈을 벌어주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되겠지요?
    서구의 개인주의와 차별되는 우리의 가족주의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독에 해결책이 될 수 있으리란 생각을 요즘 많이 합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2. 또웃음 2012.03.04 11: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변신' 좋은 책이죠. 고전이나 명작은 '시대'와 상관없이 가슴을 뜨끔하게 하는 것 같아요.

  3. 빨간풍차 2012.03.05 0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을 가까이 하면서도 고전(명작)은 생각보다 적게 읽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적인 문제에 더 관심이 많아서일까요? 2차적인 해석이 귀찮아서였을 수도 있겠구요. 독서가님께서 추천하시니 꼭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4. 실버 2012.04.18 07: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갑자기 불현듯 10년전에 읽었던 카프카의 변신이 다시 보고 싶어져서 다시 읽고 있네요.  그땐 십대라서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고 끔찍하게 생각하면서 단숨에 읽었던것 같은데 지금은 이것 저것 생각이 많아져서 진도가 느리고 읽기도 힘드네요.  주인공은 정말 하루 아침에 벌레로 변한걸까요?  자신이 벌레로 변한것을 보고도 별로 놀라지도 않고 일 가는것을 걱정하는 Gregor가 왠지 슬프네요.  그는 예초부터 벌레였던 거에요.  다만 그걸 이제야 깨달은거지요.  그는 지금까지 철저하게 일벌이나 일개미처럼 꾸준히 일만 해서 가족들을 부양하는 인간같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고 더 이상 가족들을 부양할수 없는 처지가 되자 자신이 벌레같은 존재라는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거죠.  우울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