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으로 두 편의 중편과 한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세 작품 모두 다 대사보다는 지문에 치중하는 작품이며, 따라서 왠만큼 집중하여 읽지 않고서는 소설의 깊은 맛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첫 작품 <이즈의 무희>는 하층민을 멸시하던 당시의 사회적 풍조 속에서, 유랑극단의 북치는 어린 소녀에게 향하는 엘리트 남학생의 말 못하는 애틋한 심리를 서정적인 문으로묘하게 녹아내어, 소설이 이래서 필요하구나 하 느낌을 새삼 게 다.

 

스웨덴의 한림원이 <설국>의 노벨상 수상 이유로서 '일본 정신의 정수를 표현해 낸 완성도 높은 너레이티브와 그 섬세함'이라고 발표했는데 역시나 세 작품 모두 곳곳에 주인공의 심리와 어우러진, 어둡지만 서정성 넘치는 표현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 분위기에 빠져서 읽다 보니 괜히 나까지 그 묘하게 우울한 분위기가 전염되어 오는 것 같았다.

 

이것이 노벨상 작가의 위엄인가...야스나리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의 작품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스토리가 아니라 줄거리의 상황 속에 몰입하여 빠지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렇긴 하나 노벨상 수상기준에 대한 의문은 있다.

'일본 정신의 정수'라...과연 '일본의 정신'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있기는 한 것인가?

국화인 벚꽃으로 상징되는 짧지만 강렬한 인생? 사무라이 정신?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외에 또 무엇이 있나?

 

과거 친하게 지내던 일본인 친구에게 너네가 자랑하는 사무라이 정신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의를 위하여 목숨을 던질 줄 아는 무사도 정신'이라는 답을 했다. 그 순간 일본 친구의 눈은 (네가 사무라이 정신을 알 수가 있나?)라고 묻고 있는 것 같았다.

 

칼을 찬 무법자 유랑인들을 시조로 삼아 일부는 권력의 하수인이 되어 평민들의 생사여탈권을 맘대로 주물렀던 사무라이들을 미화하다 못해, 이제는 정신적인 지주로까지 삼고 있는 일본인들을 보면 정치권의 역사왜곡과 집단최면이란 정말 무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들이 자랑하는 사무라이 정신을 이어 받은 것이 바로 일본이 지금도 <자발적으로 국가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숭고한 애국자들>로 칭송해 마지않는, 바로 그 유명한 <카미카제 자살 특공대>다.

 

2차 대전 당시 총 2,500대의 자살 비행기를 띄웠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실제로 적의 군함에 들이 받은 비행기는 5%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죽음이 두려워 도망치다 격추당하고, 일부는 전장에서  우물쭈물하다 적의 총탄에 떨어져 버렸다. 그 중에는 아예 죽더라도 시체는 온전히 남기고 싶은 지푸라기 같은 희망을 가지고 목적지에서 스스로 바다로 돌진한 조종사들도 많았다고 한다.

 

카미카제 기록들을 읽다 보면 자살특공대로 징집된 조종사들이 겁이 나서 오줌을 지렸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내가 왜 천황을 위하여 죽어야 하는가에 대한 원망, 비행기에 타지 않으려고 하는 병사는 총구로 위협하여 억지로 태웠다는 이야기까지...그 예는 실로 비일비재하다.

 

적의 군함을 향해 돌진한 5%의 숫자가 사무라이 정신을 계승한 자살 특공대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속에 과연 무슨 '사무라이 정신'이 있는가?

 

집권 이후에 스스로 '라스트 사무라이'가 되겠다고 각오를 밝혔던 아베 신조의 요즘의 행동들을 보라.

 

엄연한 역사적 사실인 위안부를 부정하고,

못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식으로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고,

자기들이 하와이를 폭격하며 시작한 2차 대전을 원자탄 두 방 맞았다는 이유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국제사회에서 일본을 피해국으로 인식시키려 노력하는 그것이 '라스트 사무라이 정신'인가?

 

바로 그들의 자랑스런(?) 선조 유랑인들이 하던 비열한 방법 그대로 아닌가...?

 

말이 빗나갔다.

원래 음식이건 글이건 간에 그것들의 본질을 감추고 교묘하게 장난질을 즐기는 일본인들에 대한 편견이 있어서일까, 평소에 일본 작가에 대해서 그다지 후한 점수를 주는 편이 아니지만 과연 그렇다고 이 작가가 노벨상감인가 하는 것에는 이러한 이유들로 일말의 의문이 남기도 한다 (수상작인 <설국>을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나쁜 편견을 완전히 없애지 못하고 있다).

 

육지에서 전래되어 들어간 문화를 제외하고, 기모노와 -기모노는 백제의 옷에서 발전한 옷이다- 나막신, 훈도시, 사무라이, 게이샤등으로 대변되는 일본인 그들만의 문화는 단어 자체가 풍기는 뉘앙스에서도 알 수 있지만 그다지 품격있는 것들이 아니다.

 

실상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야스나리의 <설국>에 대한 노벨상 수상 이유로 <일본 정신의 정수>를 표현했다고 하는 한림원의 발표는, 서구 사회의 동양문화에 대한 막연하고 맹목적인(?) 호기심과 신비감을 보여주고 있다.

 

야스나리가 노벨상을 받을 당시, 서양인들은 철의 장막으로 불릴 만큼 굳게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던 중국 문화를 향하여 묘한 두려움이 섞인 신비감 마저 가지고 있었는데, 서양인으로서는 중국이라는 나라에 쉽게 접근이 불가하다 보니, 그 관심이 고스란히 문화적 보존이 잘 되어 있고 독특한 그들만의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쉽게 접근할 수 있던 일본으로 옮겨 갔던 것이다.

 

전쟁 후에 전범 국가라는 오명을 씻고 옛날의 명성을 되찾기 위하여 온 국민이 단합하여 경제력을 일으키는 동시에, 전세계를 상대로 외교력을 총동원하여 이미지 로비를 벌이던 당시의 상황과 맞물려서, 결과적으로 서양인들의 동양에 대한 문화적 동경심의 궁극의 혜택자가 일본(야스나리)이 아니었나 싶다.

 

그 유명한 <설국>마저도 지금도 노벨상 감이니 아니니 하는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나의 생각이 전혀 틀린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이 책의 이북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며 끝 맺는다.

도서관에서 대출하여 전자책으로 읽었지만 책 곳곳에서 보이는 상당한 분량의 오자는 그냥 넘어가기 힘들 정도로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다.

 

혹시 을유문화사의 관계자가 이 글을 읽으시면 다음 독자들을 위하여 수정하여 주시면 감사하겠다.

 

Posted by 소박한 독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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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강여호 2013.05.08 15: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을유 문화사 책들이 오자가 좀 많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책 중에서도 유독 을유 책들에서만 오자가 쉽게 눈에 띄더군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일본 정신의 정수. 참 미화하기 나름이긴 하지만 단 한번이라도 불의의 목적으로 사용되었다면 과감히 버리는 것도 또 하나의 정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네요. 물론 요즘 일본에게 이런 걸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요.

  2. 2013.05.08 16: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