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常의斷想2014.08.01 15:33


※ 이 글을 쓰고난 후, 평소 알고 지내던 두 분의 출판사 사장님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 분들의 주장을 충분히 존중하며 제 글이 혹시라도 그 분들의 심기를 본의아니게 불편하게 만들었다면 이 자리를 빌어 정중히 사과를 드리는 바입니다. 아울러 제 글은 어디까지나 책을 사랑하는 일개 독자인 개인의 의견임을 분명히 밝히는 바입니다. 오해의 여지를 줄이고자 본문 중에서 조금 뜻의 전달이 불명확하게 보이는 부분들을 좀더 명확한 표현으로 바꾸었습니다.



오는 11월부터 <개정된 도서정가제>가 시행된다.


개정된 <도서정가제>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말하여, 모든 도서의 판매가를 정가의 15% 내에서만 할인해 주게 되어 있는 제도이다.


지금까지는 18개월이 넘은 구간도서들은 할인율이 자유롭게 책정되었지만 앞으로 새로운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 신간, 구간을 막론하고 (실용서 및 초등학생 대상 참고서 포함) 거의 모든 도서가 15% 이내에서만 할인율을 적용하게 되어 있다. 즉, 책을 사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비싸게 사서 볼 수 밖에 없고, 또한 그동안 예외적용을 받았던 아이들의 참고서 도서지출비 또한 앞으로 상당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유를 한 번 보자.



<사진출처: 정부대표 블로그 정책공감/ 이하 인용사진 동일>




대한민국 정부 대표블로그인 정책공감에 올라있는 <도서정가제>의 시행이유를 명시한 게시물이다.


즉, <책값의 과열 인하경쟁으로 학술, 문예등 고급서적 출간이 위축되는 것을 막기 위해> 2003년 2월부터 이미 도서정가제를 시행했다는 것이다.


고급서적이 뭘까? 

학술문예지를 말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학술, 문예등의 서적만 고급인가? 아니면 호화 양장판으로 무장한 학술문예지를 말하는건가? 저작료가 비싸서 비싸게 팔 수밖에 없는 책인가? 아니면 학술, 문예지는 고급책으로만 만들어야 한다는 말인가? 이것도 아니면 학술문예지 자체가 고급서적이란 말인가?

  

굳이 내가 딴지걸지 않아도 대충 무엇을 말하는지는 짐작이 간다. 소설같이 읽어도 그만, 안읽어도 그만인 책들이 아니라 학술과 문예지같이 지식의 전승과 보존용으로 꼭 발간해야 하는 필수도서를 말하는 것이리라 생각이 된다.


그러니까 저 설명에 적혀있는대로만 해석하면 기 시행되고 있는 도서정가제는 학술문예지 등의 고급서적들의 출간이 다른 도서들의 덤핑으로 인하여 위축될까 싶어서, 강제로라도 책값을 많이 할인하지 못하도록 규제하여 그 활로를 뚫어 주겠다는 취지에서 시작했다는 뜻이라  생각된다. 거기에 더하여 책값덤핑으로 인한 출판사들의 재정적 어려움을 도서정가제 제도를 통하여 해결해 주어서 출판문화의 활성화에 기여해 보고자 함이리라.


이해는 간다. 하지만 왠지 2%가 부족한 해법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고급서적 출간의 위축이 책덤핑 때문이라는 이상한 논리도 이해가 가지 않지만, 만에 하나 그렇다 하더라도 시장원리에 의해 좌우되는 판매경쟁을 책에 대해서만 유독 가격규제를 한다는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우수한 상품은 팔리고 저급한 상품은 팔리지 않기 마련이다. 또 신상품이 나오면 구상품은 가격이 조정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품질과 가격, 할인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상품을 구매할 지 , 안할 지의 마지막 선택은 소비자가 하는 것이다. 


책도 마찬가지이다. 

합리적인 가격의 좋은 책은 팔리기 마련이고 그렇지 않은 책들은 소비자가 외면하기 마련이다.


이런 것이 시장의 경제원리일진대 책은 왜 정부가 앞장서서 가격을 통제하는가?


참으로 이상하다. 

굳이 규제를 할려면 원인이 된 학술/문예 등 고급서적 등의 양서를 꾸준히 출간해 내는 우수출판사들은 세제혜택 등의 특혜를 줘서 정책적으로 장려하면 되지 않는가? 그리고 있으나 마나한 책들로 덤핑을 일삼으며 시장질서를 어지럽히는 일부 출판사들과 유통사들에게 시정조치를 내리며 그래도 안되면 스스로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 제대로 된 정책이 아닌가?

왜 덤핑을 일삼는 일부 출판사들과 유통사들의 잘못에 대한 모든 책임을 일반 독자들이 지며 경제적인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가 하는 말이다.


예를 하나만 들자.

일부 출판사들이 신간도서를 간행할 때, 온라인 서점등 유통사들에 대한 높은 마진율을 보장해 줘야 할 뿐만 아니라, 장차 반품되거나 재고비용으로 떠안게 될 손실기회비용까지 모조리 다 감안하여 정가를 책정한다는 것 또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또한, 개정판이 나오면 출판사는 대부분 가격을 올리고 초판은 절판시켜 버린다. 그리고 남은 초판본의 재고물량은 고스란히 개정판의 가격에 포함시켜 그 손해를 상쇄시켜 버린다. 이것까지도 좋다. 개정판이니 독자는 더 비싼 돈을 주고 책을 사 볼 용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이 개정판이지 속을 열어보면 활자를 크게 하여 페이지수만 늘리거나 한 권짜리 책을 두 권으로 분권하는 꼼수를 쓴다든지 표지를 화려하게 치장하여 가격만 터무니없이 올린 책들이 허다하다.

이러니 내용도 내용이지만 독자들이 책을 사지 않는 것이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만 원대면 사던 책을 특별한 내용의 변화도 없이 단순하게 두 권으로 분권시켜 삼만 원대로 만들면 바보가 아닌 이상 누가 책을 사겠는가?


조금 과장된 면이 있을진 모르겠다. 또한 이는 일부 양심없는 출판사들의 경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일개 평범한 독자도 이렇게 느낀다는 것은 출판계가 그동안 얼마나 독자들에게 신뢰를 심어주지 못했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일부 독과점 품목들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상품들이 품질과 가격경쟁에 의해 공급과 수요가 결정되고 있다. 그런데 왜 책이라고 예외를 둬야 하는가 말이다. 

학술/문예지 등의 고급서적의 출간이 위축될까 싶어 가격을 규제한다고?

나에게는 참으로 궁색한 변명거리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굳이 진짜 이유를 솔직하게 까놓고 이야기하자면 돈을 더 받고 싶다는 얘기가 아닐까? 즉, 요즘 책값이 덤핑이 난무하여 출판계의 운영이 어려우니 앞으로 제대로 책값을 보장해줘서 출판계의 고사를 막아달라...뭐..이것 비슷한 거 아니겠나? 


그렇다면 그동안의 출판계와 유통계의 잘못은 방치하고 일반 독자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규제가 과연 정답일까의 의문이 남는다.

뭐...어쨌거나 <도서정가제>라는게 지금까지 시행해 온 제도였으니 여기까지는 좋다.


구체적으로 앞으로는 어떻게 바뀌는지 한 번 보자.





얼핏보면 현행 제도와의 할인율 차이가 4%밖에 나지 않는 것 같으나 자세히 보면 개정제도에는 정가제 적용 예외대상이 없다 (사회복지시설에 판매되는 간행물 제외). 또한 지금까지는 실용서와 초등학습참고서는 도서정가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었지만 앞으로는 예외없이 모든 도서에 적용하게 되어 있다.

18개월 지난 구간도서들은 경우에 따라 정가변경이 가능하다고 되어 있는데 이 말은 원칙적으로 신간이건 구간이건 (아동학습참고서 포함) 전부 15% 이내의 할인율 범위에서만 팔아야 한다는 뜻이다.


정책공감에서는 도서정가제는 2003년부터 이미 시작한 것으로 말하고 있으나 구간도서에까지 확장하여 적용되는 개정된 정책은 완전히 새로운 제도를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일 만큼 그 내용이 파격적이다.


이하, 각설하고...


이번에는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 과연 제대로 정착할 것인가? 평범한 독자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보자.


1)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가구당 도서 구입비는 2012년은 19,026원이고, 2013년은 18,690원에 불과하다. 즉, 1년에 가구당 책 2권을 사지 않았다는 말이다.

지금같이 신간도서 최대 20% 할인, 구간도서 무제한 할인제도 하에서도 저런 사정인데 책값 할인율을 더 막으면 출판계의 사정이 나아지리라 생각하는 정책 입안자나 출판관련 사람들의 생각이 참으로 순진하게 보이는 것은 나만 그런걸까?


독자로서 보는 결론은 명쾌하다.

모든 이유를 떠나서 좋은 책은 팔리기 마련이다! 

책이 팔리지 않는 것은 독자들이 받아들이기엔 부담되는 비싼 가격책정 때문이거나, 아니면 굳이 돈주고 사 볼 필요를 못 느끼는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책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절한 가격과 좋은 내용의 책들은 독자들이 외면하지 않는다.


사족으로, 오래됐긴 하나 왜 책값들이 하나같이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한가에 대한 글을 올린 적이 있다.

많은 종류의 책들 중에서 일부분이긴 하겠지만 어쨌거나 책값이 어떻게 정해지는지 알고나면 허탈해 웃음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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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새로운 도서정가제는 초등학생 대상 학습참고서에도 예외없이 적용된다. 앞으로 비단 저소득층 뿐만 아니라 아이를 가진 모든 부모들의 도서구입 가계지출이 늘 수밖에 없다. 


개정된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 제일 손해를 볼 학부모들이 여태 잠잠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 제도가 있는 것은 어렴풋이 알지만 그 제도가 새롭게 개정되었으며, 그 새롭게 개정된 도서정가제가 11월부터 시행이 된다는 것을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아니면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개정된 도서정가제 시행에 대한 홍보나 광고는 아직도 사실 잘 보기 힘들다.


마무리를 하자.


개인적으로는 평소에도 구립과 시립도서관을 많이 이용하는 편이고, 꼭 소장하고 싶은 책은 가격이 좀 비싸도 구입하는 편이라 사실 개정판 도서정가제 시행은 나 개인과는 그다지 큰 상관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내 블로그를 찾아오는 분들에게 새로운 도서정가제에 대한 팩트를 정확히 알릴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화살은 이미 시위를 떠났다. 이젠 지켜보는 수 밖에 없다.

굳이 내가 예측을 하자면, 나는 새로운 도서정가제가 잘 정착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두개의 자잘한 이유들이 더 있긴 하나 크게 봐서 위에 든 2가지 우려때문이다.


새로운 도서정가제를 시행하고 나서 책구입을 포기하는 이탈 독자들과 저소득층 학부모들의 저항을 만날 수 있다. 그럴 경우, 빠르면 1,2년 이내 제도 자체를 다시 손질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다시 원점으로 회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수 독자들의 외면으로 아예 출판계 전체가 불황에 빠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예측되는 것은, 책값이 아무리 비싸더라도 꼭 살 수 밖에 없는 교과서나 참고서같은 학습자료 등의 경쟁이 앞으로는 더욱 심화되어, 새로운 제도하에서 출판사들간에 서로 내 책, 네책이 더 낫네 하는 아전투구식 경쟁이 치열하리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짚고 넘어가자.

2003년부터 발효되고 있는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로 인문/학술 등 고급서적의 출간이 그동안 얼마나 활성화되었는지 결과가 궁금하다. 또 다시 기존의 규제를 강화하여 시행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결과가 안 좋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얼마만큼 안좋은 것인지 발표하여야 하는 것 아닌가?

고급서적의 활성화를 이유로 일반 독자들의 희생을 강요하였으면 그 결과도 독자들은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 도서정가제만 계속 밀어 붙인다면 이는 나의 편협한 시각으로는 가격인상이 진정한 목적인, 출판계 공동의 집단이기주의로 밖에 비치지 않는다.


단순한 진리를 잊지 말자.

출판계가 좋은 책을 꾸준히 만들어 내고 적절한 가격으로 승부하면 독자는 반드시 화답한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굳이 시장원리를 무시하며 억지 규제를 하지 않아도 좋은 책은 팔리기 마련이라는 말이다.





Posted by 소박한 독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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