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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명상,깨달음에 관한 글

도마복음과 예수의 진짜 가르침

by 소박한 독서가 2016. 1. 14.

* <성경의 역사> 본문 전면 보완 완료! 역사적 사실과 다른 오류가 발견되지 않는 한, 이것을 최종판으로 합니다.



경고)

아래의 글에는 성경의 오류 및 신약성경의 문제점, 한국 교단이 위경으로 단정하고 있는 도마복음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교회와 교리의 개혁을 위해 일시적인 믿음의 흔들림 마저도 감수할 용기가 있는 분들만 끝까지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1. 성경의 오류들


나는 교회를 20년 이상 다녔었다. 

그냥 습관적으로 다닌 것이 아니라 성경 공부도 열심히 하고 예수의 뜻대로 살려고 기도하면서 나름 경건한 청,장년기를 보냈었다. 천성이 책읽는 것을 좋아하는지라 성경은 물론이고 성경에 관련된 책들도 두루 꼼꼼하게 정독했다.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성경을 자세하게 알려고 하면 할수록 의문점들이 늘어났다.

모르고 믿으면 그만이되, 알고 믿으려고 하면 할수록 의문점이 커져 갔던 것이다.


무오성과 무결점성을 자랑한다는 성경에서, 그것도 핵심인 4대복음서에 기술된 예수의 탄생과 족보, 죽음의 장면이 어째서 다 다르게 기술되어 있는가? 

성경의 오류들 중에서 몇 가지만 기술해 보자 (글의 주제상 신약 부분만 다룬다).


탄생의 장면부터 보자.


마태2:1에는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예수의 탄생을 보러오는 유명한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누가 2:15에는 근방의 목자들이 보러 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어느 것이 맞나?

 

마태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의 가족은 쭈욱 베들레헴에서 살아온 듯이 보인다. 베들레헴에 있는 요셉의 집에서 예수가 태어난 후, 헤롯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해 있다가 헤롯이 죽자 그제서야 나사렛으로 가서 살기 시작한다. 그런데 누가 2:4 이하에는 그들이 나사렛에서 살다가 단지 호구조사를 위하여 베들레헴으로 간 중에 외양간의 구유에서 예수를 낳은 것으로 나온다. 

어느 것이 맞나?


예수의 족보를 보자.

예수의 할아버지는 도대체 누구인가? 야곱인가? 헬리인가? (마태 1:15-16와 누가 3:23 이하)


또, 마태와 누가에 기술된 예수의 족보는 마치 남의 집 족보같이 왜 그리도 서로 다른가? 이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족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만큼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은가? (마태 1:1~17, 누가 3:23~38)


예수가 돌아가신 죽음의 장면도 그렇다.

예수가 임종하며 남기신 진짜 마지막 말씀은 다음의 3가지 중에서 어느 것인가?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마가 15:34, 마태 27:46).

"아버지여, 제 영혼을 부탁하나이다" (누가 23:46).

"내가 목마르다...(중략)...다 이루었다" (요한 19:28-30).

 

배신자 유다에 대한 죽음의 기록도 그렇다.

마태복음 27:5에서는 <목 매달아 죽었>다고 되어 있는데 사도행전 1:18에는 <배가 터져 창자가 흘러나와> 죽었다고 되어 있다. 어쨌든 죽긴 죽었으니 큰 오류는 아닌걸로 생각한다.


간음하다가 예수 앞으로 끌려 나온 여인에게 예수는 말했다.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한8:7)

당시의 율법으로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히면 남자와 같이 처벌받게 되어 있다. 그런데 남자는 어디로 갔는가? 설마 남자는 현장에서 때려 죽이거나 풀어 주고 여인만 끌고온 것인가?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마태 18:22)시는 자비로운 예수가 고작 몇 줄 앞에서는 단지 3번만 용서받을 기회를 주라고 하신다(마태 18:15~17). 

예수는 절대로 한 입으로 두 말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러면 이는 어찌된 일인가?


마태 16:28에 보면 다음과 같이 예수가 하신 말씀이 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도 있느니라>. 하지만 예수가 AD 30년경에 처형당한 후로 거의 2천 년이나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다!


왜 예수는 천국이 눈으로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너희들 각자의 안에 있다고 하셨을까? (누가 17:20-21) 

이는 예수가 당신의 입으로 직접 천국을 부정하시는 충격적인 선언이 아닌가?


말할 필요도 없지만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읽으면 이와 같이 모순되거나 일관성이 결여된 표현들, 이상한 표현들이 훨씬 더 많이 보인다 (예: 이미 유명해진 오류이지만 창세기 1장14절에 보면 하느님이 태양을 만드사 비로소 밤과 낮이 구별된다. 이는 넷째 날의 일이었다. 즉, 셋째 날까지는 낮과 밤이 없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천지창조의 첫째 날부터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라는 표현은 무엇인가??? 또한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방주로 이끌라고 명령한 동물은 창6:19에 적힌대로 암수 한 쌍씩인가? 아니면 창7:2에 적힌대로 정결한 동물과 새들은 일곱 쌍씩인가?)


성령에 의해 기술되어 내용상 결점이 전무하다는 성경이 어째서 이토록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인가?

의문점이 점점 커져 갔지만 어디서도 나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목사님에게 물으면 열이면 열 다 그냥 믿으십시오라고 말한다.

의심하는 것 자체가 죄라고 했다. 더욱 깊게 믿으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모르고 믿는 자,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이 있다고도 한다.


나도 믿고 싶었다. 그러나 서로 다른 두 가지 기술들 중에서 어느 쪽을 믿으란 말인가?

백 번 양보하여 두 가지 다 믿는다 치자. 그래도 가장 중요한 의문이 하나 남는다.

천국이 눈으로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고 너희들 각자의 안에 있다고 하신 누가복음 17:20-21의 말씀이다. 


이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믿자니 천국이 눈으로 볼 수 있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거짓말이 되고, 안믿자니 성경에 엄연하게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 말씀이 아닌가? 천국이 있다는 것을 믿으란 말인가?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란 말인가? 도대체 어느 것을 믿으란 말인가?


의문점이 커짐과 비례하여 거의 매 주마다 빠지지 않고 강조하는 헌금과 십일조[각주:1]를 독려하는 이야기가 점점 까칠하게 들려 왔다. 왜 교회는 맨날 성전건축 이야기만 할까?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각주:2]고 말씀하신 예수가 과연 으리으리한 자기 집을 좋아 하실까?

마음속으로 삐딱한 신앙적인 갈등을 한참 키워 가다가 어느 날 교회로 가는 발길을 끊어 버렸다.

그동안 등한시했던 성경의 역사를 새로 공부하면서 나 나름대로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는 예수를 믿으라고 말한다. 나도 그런 줄 알고 20년 이상 열심히 믿었었다.

지금은 진짜 믿고 따라야 할 대상은 예수 자체가 아니라 예수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예수의 진짜 가르침> 말이다.



2. 성경은 조작되었나?


<예수는 신화다>를 쓴 프레케와 갠디는 예수가 허구적인 인물이라고 주장을 하지만, 나는 예수가 전 세계 인구의 반 이상이 그에게 감화를 받을 만큼 엄청난 영향력을 주고 가신 실존한 성자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교회에서 배우는 신약성경이 사실은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라, 로마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만들어지고 조작된 가짜 말씀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이다.


서기 367년, 로마는 27권의 신약성경 경전들을 확정하면서 그 외의 경전들을 모조리 불태웠다. 

위정자들은 그러한 정책에 반대하는 신자들을 철저하게 색출하여 그들의 뜻에 따르기를 서약받았다. 그 경전들에는 무슨 내용이 들어 있었길래 전부 수거하여 불태우고 숨기거나 감추는 신자들을 색출하여 벌했을까?


모든 것은 미궁에 덮힌 채 20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고...

오늘날까지 교회안에는 로마가 정해준 신약성경과 교리만이 남아 전해져 오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가 이 모든 것을 일거에 뒤엎어 버릴 충격적인 대형 사건이 일어났다!

70여년 전, 예수 시대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지금은 거의 공인된- 13권에 달하는 나그함마디 문서, 특히 도마복음이 발견되었는데, 이 문서들에 세계적인 조사기구까지 만들어져 학자들이 달라붙어 연구한 결과가 슬슬 결실을 맺어 지금은 진짜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실체가 조금씩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 내용들을 한 마디로 설하면,


예수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도마복음에서 예수는 천국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깨달음에 있다고 하신다.

누구나의 마음 속에는 그러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겨자씨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잘 키우면 (참나를)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설파하신다. 또한, 예수는 자신을 메시아나 구세주로 인식하지 않는다. 천국과 지옥, 피의 대속이나 부활에 대한 언급도 없다. 

단지, 신성을 부여받은 그리스도로서의 예수가 아니라 인간 현자로서의 예수가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각자의 깨우침을 독려하는 "깨달은 자"로서만 나타날 뿐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누가복음 17:20-21의 미스테리한 말씀, 즉 "천국은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 각자의 안에 있는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도 이제서야 자연스레 이해가 된다!


말할 것도 없이 이는 붓다, 불교의 고승들, 크리슈나무르티, 마하리쉬, 마하라지를 비롯한 인도의 성자들...등등 깨달음에 이른 수 많은 성자들이 강조하신 말씀과 똑 같다!


이러한 도마복음의 말씀을 받아 들인다고 하면, 우리는 하나의 놀랄만한 결과를 도출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즉, 지구상의 모든 깨달은 자들이 가르치는 내용은 예외없이 똑같다는 것이다![각주:3]


왜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성경 말씀이랑 초기 기독교의 원전에서 보이는 예수의 말씀이랑 이렇게 다를까? 이 내용상의 커다란 괴리 사이에 우리가 모르는 무엇인가 커다란 음모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의문을 조금이라도 풀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이 어떻게 성립되었는지 그 역사를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성경의 역사를 정확하게 알고 나면 과연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신약의 내용들이 진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게 된다. 


아래 글을 꼼꼼히 읽어 보시길 권한다.



3. 신약성경의 역사


AD 367년까지는 오늘날 우리가 신약이라고 부르는 성경이 없었다. 

예수가 서기 30년에 돌아가신 이후로 337년이나 지날 때 까지도 오늘날 우리가 정경이니 외경이니 부르는 구분이 없었다는 말이다. 제정 로마의 평화시대 즉, 팍스 로마나의 최전성기를 전후하여 초기 기독교 세력은 안정적으로 그 범위를 점점 확장해 갔으며, 오늘날의 성경책같이 권위를 부여받은 확정된 경전들이 부재했던 관계로,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경전을 쓸 수 있었으며, 그 결과 수많은 경전들이 존재하고 있었다.[각주:4] 그 어중이떠중이 경전들 속에는 진짜 예수의 말씀을 기록한 경전들도 다수 있었다고 추정된다.


따라서 천국은 각자의 깨달음에 있다고 주장하는 영지주의적 종교관을 포함하여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느니, 예수는 예언자라느니, 하나님은 한 분이라느니 혹은 창세기 3장에서 증거하는 대로 여러 분이 계신다느니, 천국은 하늘에 있다느니 혹은 없다느니..등등.. 기독교들 사이에서도 서로 믿는 대상과 교리가 조금씩 서로 달라 종교인들간 분열의 틈이 점점 커지고 있었으며, 미트라스교(태양신 숭배교)를 포함한 온갖 수호신들까지 사회 구석구석에 존재하던 터라 당시의 로마는 온갖 종교로 극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정치적으로도 또한 무려 6명의 황제가 통치하는 6두정치로 넘어가 있던 시대라 4세기초의 로마는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말그대로 극심한 혼란기를 겪고 있었다.

6명의 황제중 한 명이었던 콘스탄티누스는 마침내 칼을 빼들고 나머지 5명의 황제를 끌어내리면서 유일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유일 황제로 가는 길목에서 국민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하여 AD313년에 그 유명한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여 모든 종교를 공인하게 된다. 당연하지만 그가 노린 것은 가장 신도수가 많은 기독교였다.[각주:5] 


이어서 50여년 뒤인 AD 367년에는 기독교와 관련된 27권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나머지는 전부 소지 금지령을 내리고 모조리 불태워 없애라는 명령을 내리게 된다. 이제는 유일 왕권이 확립되어 정치적인 안정을 이룬 이상, 통일된 교리 및 경전을 정하고 나머지는 금지함으로써 더 이상 기독교내의 분열을 막고 그러한 종교적인 안정 위에서 제국의 통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 27권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가 읽고 있는 로마제국판 신약성경이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똑같이 권위를 인정받던 많은 경전들이 하루 아침에 27권에 포함되지 못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불태워 없어졌으며, 읽어서도 안되고, 소지만 해도 처벌을 받는 위험서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의문이 남는다.

27권의 자리를 차지한 경전들의 선정 기준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왜 다른 경전들은 안되고 그 27권만 선택되었을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로마 제국에 의해 선택된 27권은 전부 예수 사후에 집필된 경전들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불태워지고 소지만 해도 처벌을 받는 경전들은 나머지 초기 경전들을 포함한 온갖 경전들 전부였다.


불태워진 경전들 중에 예수께서 살아계실 때 쓰여진, 진짜 예수의 말씀을 담은 경전들은 과연 없었을까?


이것을 유추해 보기 위하여 다시 처음부터 꼼꼼하게 살펴보자.

먼저 기독교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탄생부터 알아보자.


도마복음이야기를 쓴 김용옥 교수는 예루살렘과 야훼의 성전이 파괴된 AD 70년의 비극을 진정한 기독교 탄생의 시발점으로 본다.[각주:6]


서기 66년 팔레스타인 민족은 로마의 지배에 반대하여 큰 폭동을 일으켰다. 4년 후인 서기 70년, 로마의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폭동에 대한 징벌로 그 아들인 티투스에게 군대를 딸려보내 예루살렘과 성전을 초토화시켜 버렸다.


지성소를 짓밟는 로마군들의 머리위로 성난 야훼의 벼락이 내리칠 것을 기대하며 좌우 능선에 쭈욱 둘러서서 구경하던 구름같이 수많은 이스라엘 민족을 비웃기라도 하는 양, 하나님의 성전은 그 날 로마군의 발굽아래 철저히 무너졌다.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이란 선민의식의 자부심을 안고 살던 유대 민족들에게 그 충격은 어느 정도였을까...?


당시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과 성전의 파괴는 단지 땅을 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이 철석같이 믿고 따르던 야훼 하나님으로부터 그들 민족이 철저하게 버림받았거나, 그들이 평생 믿고 따르던 하나님이 알고보니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신이었다는 깨달음을 주는 엄청난 민족적 대충격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통곡의 벽>이란 이름이 붙어 있는 폐허 앞에서 엄청난 절망감과 허무함에 눈물만 흘리고 있는 유대 민족들을 다시 뭉치게 할 뭔가 새로운 강력한 구심점이 필요하게 되었고, 그 선봉에 선 사람이 마가복음의 저자였다.


그는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높여 외쳤다!

야훼는 그들을 버린게 아니라 그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을 대신하여 보냈던 것이라고.. 그리고 예수는 이 죄인들을 심판하기 위하여 반드시 다시 올 것이라고!

인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다시 탄생하는 순간이었다.[각주:7]


이후 마가의 복음을 보강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또한 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살을 붙여 철저히 예수에게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신성을 부여하게 된다. 이 복음들은 폐허 위에서 절망하여 울고있는 유대인들을 하나로 뭉쳐 다시 일어나게 했으며, 제일 나중에 전파된 요한복음으로 그 화려한 완성을 이루게 된다.


기독교(의 뿌리)는 이렇게 탄생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기독교는 예수 사후에 생겨난 종교라는 것이다. 이 말은 마가복음의 저자가 폐허 위에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부르짖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예수는 그들에게 고귀한 가르침을 남기고 40년전에 돌아가신 유대교의 위대한 스승이자 예언자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그런 예언자에 불과했던 예수를 마가복음의 저자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들의 구세주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마가복음의 충격적인 주장에 대한 반향은 엄청나서 그 이후 예수에게 신성을 부여한 마태, 누가, 요한복음 등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각주:8] 

새로운 구세주 예수를 믿고 따르는 기독교의 무리들은 2세기와 3세기의 황금기를 거치며 들불처럼 세력을 확장해 나가지만 곧 장벽에 부딪치게 된다. 점점 강대해져 가는 기독교 세력에 불안을 느낀 일부 로마 황제들이 그들을 박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각주:9] 


4세기 초, 유일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 위하여 나머지 5명의 황제와 열심히 싸우고 있던 콘스탄티누스는 국민들의 강력한 응원이 필요하게 되었고, 주위를 둘러봐도 이미 거대해진 기독교만한 세력은 어디에도 없었다. 마침내 AD 313년, 그는 밀라노 칙령을 통해 종교의 자유를 선포함으로써, 바로 직전의 황제인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박해했던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를 로마의 종교로 받아 들이게 된다.[각주:10] 목적은 당연히 엄청난 세력을 자랑하는 기독교도들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서였지만 바로 얼마전까지도 박해해 왔던 기독교만 공인해 주기에는 낯이 간지러웠던 탓이다.


어쨌거나 이는 기독교계에는 말 그대로 엄청난 축제였다. 로마가 반역자로 낙인찍어 십자가에서 처형한 사람을 정식으로 우주의 절대자로 승격 복권시킨 대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마가복음의 저자가 예루살렘의 폐허 위에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를 부르짖은 후 250년이 지나 마침내 그들의 지배자로부터 예수는 우주의 절대자라고 정식으로 공인받았으니 기독교도들의 기쁨이 어떠 하였겠는가?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도들로부터 하루 아침에 일약 영웅이 되었음은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다.


<참고사항>

AD 337년에 콘스탄티누스가 죽고 우여곡절 끝에 그의 둘째 아들인 콘스탄티우스의 시대가 된다.

그는 아버지의 기독교 공인을 더욱 강화시켜 아예 기독교를 유일신에 대한 유일 신앙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이는 인류 문화사적으로 가장 잔인한 결정이었음이 곧 바로 드러나게 된다.

즉, 기독교가 유일신에 대한 유일신앙으로 결정되자마자 찬란한 로마/희랍 문명의 유산들이 우상숭배란 이름하에 기독교도에 의해 처절하게 파괴되어 버렸던 것이다. 

길거리에 산재한 제우스, 쥬피터,아테나,비너스의 아름다운 신상들이 기독교들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고 약탈되었다(오늘날 우리가 박물관에서 보는 로마/희랍 신상들이 거의 다 부서지고 뭉그러지고 잘라진 형태로 보이는 이유가 다 여기에 있다). 

콘스탄티우스의 뒤를 이은 율리아누스 황제는 기독교의 이러한 횡포를 깨닫고 "밀라노 칙령의 원래 정신으로 돌아가자"라는 취지로 기독교의 유일신앙 제도를 파기하고 다시금 모든 종교에 대해 신앙의 자유를 선포하였다. 그러자 기독교는 율리아누스 황제의 이름 앞에 "배교자" 딱지를 붙여 버렸다. 

오늘날까지 역사에서 율리아누스 황제 이름 앞에는 반드시 배교자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기독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원한 것이 아니라 <신앙의 독점>을 원했다는 역사적 증거이다. 

기독교는 이미 4세기부터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독선적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 참고 : 기독교 성서의 이해 p.363~365


밀라노 칙령을 선포한 이후, 콘스탄티누스는 니케아 공의회란 이름으로 로마 카톨릭 회의를 소집하였고 이 회의는 AD 367년까지 4차례에 걸쳐 이어졌다. AD 367년에 드디어 예수에게 신성을 부여한 27권의 기독교 경전들이 신약성경으로 확정되었다 (기독교를 공인했기 때문에 예수에게 신성을 부여한 기독교 경전들만을 뽑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왜 27권만이냐? 그 당시에는 온갖 어중이떠중이 경전들이 난무하던 시대였다. 예수에게 신성을 부여한 기독교 경전일지라도 수준낮은 경전들이 즐비했다. 그 중에서 정경으로 삼을만큼 수준이 높은 것들만 고르다 보니 27권만 선택되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기독교를 공인하고 보니 하나님과 함께 신이 두 분이 된 것이다. 그래서 니케아에서는 "성자는 성부와 동일한 실체이다"라는 니케아 신경을 선포함으로써, 두 명의 신을 인정하게 된다.[각주:11]  나중에 이것은 3위1체론으로 발전하여 다수결 투표를 통해 통과되었다.(이 투표의 의미는 인간들이 예수에게 공식적으로 신의 지위를 부여하였다는데 있다.)


또한, 27권에 포함됐다 하더라도 당시까지 사람들의 뇌리속에 면면히 남아 있었던 진짜 예수의 가르침일지도 모르는 윤회등 영지주의적 흔적이 묻어있는 문장들은 전부 삭제되거나 수정되었다 (노골적으로 영지주의적 개념을 담은 여타 경전들은 당연히 소지금지 명령과 함께 전부 수거되어 불태워졌다). 또한 그들은 신약성경에 사탄 개념을 새롭게 도입하여 지옥을 창조해 내고 최후의 심판을 강조하는 말세론을 집어넣는 등 전체적으로 성경의 내용을 인간에게 두려움과 죄의식을 불러 일으키기 위한 도구로 만들었다.


한 마디로 말하여, 오늘날의 신약성서는 4세기까지 존재했던 모든 경전들 중에서, 예수에게 신성을 부여한 기독교 경전에 한정하여 취사선택한 발췌물일 뿐이며, 그 마저도 기득권층의 목적에 따라 마음대로 삭제, 편집, 가공등이 이루어진 수정판인 것이다.


<참고사항>

후세의 학자들이 인정하듯이 콘스탄티누스는 열렬한 태양신 숭배자였다. 

당시 유일 황제로의 패권을 추진하던 콘스탄티누스는 비록 정치적인 필요에 의해 당시 가장 큰 종교 세력이었던 기독교를 공인해 주긴 했지만 정작 그 자신은 죽기 전까지 세례받기를 거부했고, 숨이 마지막으로 넘어가기 직전에야 세례를 받았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 13>에서 이를 두고 "천국을 도둑질하고" 죽었다고 재미있게 표현했다.


콘스탄티누스는 말년에 가서야 기독교의 교리에 감화되어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천국을 도둑질하고 죽었을지 모르지만, 기독교를 공인할 당시에는 틀림없는 태양신 숭배자였다. 따라서 그는 기독교를 최대한 태양신에 맞추고자 했던 것 같다. 


즉, 마가복음의 저자에 의해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었던 예수를 그가 맹신하던 태양신의 현세적 현시로 간주하여 동일시했으며, 또한 기독교의 기념일을 태양신교의 그것과 똑같이 만들었으며, 성경의 내용속에 교묘하게 태양신교의 교리를 심는 등의 일련의 성경 수정및 왜곡 작업으로 두 종교의 특성을 두리뭉실하게 합침으로써, 기독교의 정통적 신앙의 지위를 태양신의 그것과 합치시켰던 것이다.[각주:12] 

(기독교의 원래의 성스런 안식일은 토요일이었지만 태양신의 축일인 일요일로 바꾸고, 또한 4세기까지 지켜져 온 예수의 탄생일을 1월 6일에서 태양신의 기념일인 12월 25일로 바꾸었다. 그가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하지만 많은 역사가들이 이를 믿지 않는 것도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에다가 임종 직전에야 받은 세례사건 때문이다).


실의에 빠진 유대인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하여 마가복음의 저자가 부르짖었던 신격화된 예수와, 콘스탄티누스가 통치에 이용하기 위하여 신격화한 예수는 이처럼 그 속뜻부터 서로 달랐다.


(참고)

유튜브에 가면 <시대정신>이라는 유명한 동영상을 볼 수 있다. 거기에 보면 기독교의 교리가 태양신교를 그대로 베낀 것이라는 놀랄만한 증거들이 말그대로 수두룩하게 나온다 (이는 말할 필요도 없이 콘스탄티누스가 성경의 내용을 태양신교에 맞추도록 교묘하게 왜곡시켰기 때문이다).[각주:13] 

한글자막도 있으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감상해 보시길.



이후부터는 일사천리였다.

27권의 새로운 경전들로 이루어진 신약성경이 확정되자마자 그 때까지 동일한 권위를 가지고 있던 (진짜 예수의 가르침이 들었을지도 모르는) 오래된 수많은 영지주의 경전들 및 여타 다른 경전들은 즉시 소지금지 명령과 함께 모조리 수거되어 불태워졌으며, 또한 그 이후 새로운 신약의 교리에 따르지 않는 신자들 역시 처형되거나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 소멸되었다.


그 후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신약성경에 관한 한, 오늘날도 AD 367년의 상황과 완전히 똑같다.

영지주의 천국관을 말살시킨 AD367년의 사건 후 거의 170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으로 요약되는 로마제국판 신약성경을 그대로 쓰고 있지 않은가? 


여기까지가 신약성경의 성립과정에 얽힌 역사적 사실이다.

최대한 역사적 사실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내에서 쉽게 쓰느라 노력했다. 이는 교회내에서는 알게 모르게 연구나 토론이 금기시(?)되는 민감한 내용들이라, 교회를 몇 십년 다닌 사람들조차 자기가 공부하지 않는 한, 이러한 내용을 알기 힘들었을 것이다. 교회에서는 신약성경을 일컬어 예수님 말씀이 아닌 가짜 경전들을 걸러내고 진짜 예수님의 말씀만 모은 것이라고 가르친다. 나도 그렇게 배웠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말이지 않은가? 누가 진짜 가짜 예수님 말씀을 구별하여 골라 냈다는 말인가?)

The truth is out there....!


성경의 역사 등 더욱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신 분은 각자가 조사해 보시기 바란다. 


아무튼 그렇게 20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고...어느 날, 진짜 기적이 일어났다!

진짜 예수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고 믿어지는 몇 개의 문서들이 이집트의 어느 바위밑 항아리 안에서 2천 년이란 세월을 건너 뛰고 거의 온전한 상태로 발견되었던 것이다. 로마의 강압적인 종교박해에 항거하던 일부 수사들이 소각될 운명에 처한 경전들을 항아리에 담아 땅 밑에 파묻음으로써 훗날을 기약한 것이 기적적으로 후세에 햇빛을 본 것이다 (여기에 얽힌 이야기는 도올 김용옥 교수의 <도마복음 이야기 1권>을 읽어 보시길 권한다. 아주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게 기술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위에서 언급한 말세론에 대한 이야기이다.

신약성경 마지막에 있는 말세론, 즉 계시록은 예수의 말씀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계시록은 BC150년 부터 AD68년까지 존속했던, 종말론을 신봉하던 쿰란 공동체 신자들이 믿던 말세론을 계시록이란 이름으로 바꾸고 내용을 적당히 고쳐서 정경에 편입시킨 것이다. 목적은 위에서 이미 말했듯이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죄의식을 심어 맹목적으로 교회를 믿고 따르게 하기 위함이었다(이에 종교개혁가로 유명한 마틴 루터는 계시록을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캘빈은 그의 주해서에서 계시록을 아예 빼버렸다).



참고)

흔히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을 한다. 여기서 예수는 인간을 뜻한다. 반면에 그리스도는 메시아다.

즉 <예수 그리스도>란 인간이 메시아와 동일시된 모순된 표현이다. 또한 예수가 메시아라면 교회가 모시는 신은 하나님과 더불어 두 분이 된다. 인간, 메시아와 하나님...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를 기막히게 해결한 것이 정경 27권을 확정시킨 아타나시우스에 의해 신봉된 3위1체론이다.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는 자신의 입으로 3위1체를 말씀하신 적이 결코 없다는 사실이다!

3위1체론은 인간과 메시아, 하나님의 서로 모순되는 관계를 해결하기 위하여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즉, 인간이) 다수결 투표로 채택한 교리일 뿐이다. 


* 도마복음에서 예수는 자신을 메시아로 인식하지 않으신다!

* 오늘날까지도 유대교는 3위1체론을 일체 배격하고 있으며 예수를 단지 예언자로만 본다! 

* 유대교에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은 있으나 신약에 주일을 지키라는 말은 없다!




4. 예수의 진짜 가르침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위에서 약술하였듯이 신약성경의 내용은 진정한 예수의 말씀을 담은 경전이라고 보기에는 서로 모순되는 어설픈 내용으로나, 집필된 시기로나, 성경의 내용을 수정한 역사적 기록으로나, 27권 선정 동기로나 그 어느 면을 봐도 의심스러운 점이 너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신약성경이 진짜 예수의 말씀을 담은 경전이라는 것을, 혹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은 영영 사라져 버렸을까?

다행히도 희미한 단서가 하나 남아 있었다!


오늘날 신약성경의 4대 복음서를 보면 내용이 다른 부분도 많지만 중복되는 부분들도 매우 많다.

최초로 기술된 마가복음이 661절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뒤에 기술된 마태복음은 마가에서 600절 정도를 차용하였으며, 누가복음은 350절을 차용하였다.


문제는 마가복음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마태와 누가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중복 구절들이 200절 이상 보인다는 것이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 밖에 없다. 

마태와 누가의 저자는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어떤 공통된 자료를 보고 그 내용을 인용했던 것이다! 


이것들은 과연 어떤 자료에서 인용 되었을까? 

만약,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저자가 보고 쓴 그 자료가 -Q자료라고 명명되었다- 내용의 훼손없이 원본 그대로 발견된다면, 이는 예수의 원래 말씀에 가장 근접했으면서도 시대적으로도 가장 앞선 경전이 될 것이 아닌가?


학자들은 더욱 연구를 진전시켜 지금은 사라져 버린 이 -Q자료라고 명명된- 경전이 말씀으로만 이루어진 가라사대 복음이었을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 가라사대 복음은 진위성을 의심받고 있는 신약성경의 4대 복음서에 결정적인 응원군이 될 수도 혹은 치명타가 될 수도 있는 증거를 가졌을 지도 모르는 매우 중요한 경전이다!


중요한 포인트는, 예수 당시에 쓰여지고 예수의 말씀을 첨삭이나 변조없이 온전하게 싣고 있는 원본 경전이 실제로 존재하느냐의 여부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도마복음이 나타 났다! 예수 당시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며, 훼손되지 않고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고, Q자료보다도 더 오리지날한 예수의 말씀으로 간주되며, 가라사대 복음이며, 마태와 누가에 공통적으로 쓰여 있는 말씀들과 일치하고, 더욱 충격적이게도 (위에 핵심 내용을 기술하였듯이) 신약성경에 힘을 보태기는 커녕 오히려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핵폭탄급의 내용이 추가로 기록되어 있다!


1970년대경에 도마복음을 연구하기 위한 세계적인 연구기구가 설립되고 많은 학자들이 연구한 이래로 40여년이 흐른 지금, 불행인지 다행인지 추세는 도마복음을 진짜로 인정하는 분위기로 거의 굳어져 가는 것 같다. 한발 더 나아가 도마복음이 예수가 진짜로 한 말씀에 가장 근접한 경전이라고 조심스럽게 결론내리고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도마복음이 진짜 예수님이 하신 말씀으로 판명된다면 그 의미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진다.

로마가 정해준 기독교 경전만이 존재하는 있는 세상에, 대단히 신뢰성이 높은 예수교의 경전이 -모든 경전을 통털어 작성연대가 가장 앞서고 있다-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하는 대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결과가 불러올 후폭풍은 가히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심각해진다. 


기독교회는 문을 닫거나 그 교리를 대폭 수정해야 할 것이며, 기존의 기독교리를 배척하는 예수교회도 생길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세계 신학계의 주류 이슈로 부상하고 있는 도마복음을 애써 묵살하면서 여전히 천국장사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한국 교회는?


한편, 로마에 의해 신약의 내용이 철저하게 왜곡되고 변질되었다고는 하나 원래의 경전을 토대로 내용을 바꾸었거나 왜곡시킨 것이라면 (도마복음을 인정했을 경우, 4대 복음서가 대표적으로 이에 해당된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신약성경의 행간에서도 그 원래 경전이 가르치던 진짜 예수의 가르침의 흔적들이 희미하게나마 군데군데 남아있지 않을까?


실제로 성경에 보면 당시에 예수를 비롯한 그의 제자들이 윤회설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듯한 문장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각주:14]


마태복음 17:12-13에서 예수는 세례 요한이 엘리야의 환생이었다고 선언하신다. 

못 믿겠으면 성경에서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각주:15]

또한 제자들이 예수에게 앞 못보는 장님에 대하여 "주여, 이 사람이 님으로 태어난 것은 이 사람 자신의 죄입니까, 또는 부모의 죄입니까?"라고 묻는 구절도 숙고해 보라.

계시록 13:10에는 "사로 잡는 자는 사로 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로 죽으리니..."라는 구절도 윤리적 복수의 법칙이 대대로 작용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구절이다.


보다 상세한 것은 각자가 연구해 보시기 바란다.


이하 1년여 전에 블로그에 올린 다음의 글과 내용상 비슷하니 관심이 가시면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내용이 중복되니 안읽으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도마복음은 정말 위경인가?  ☜  계속하여 읽으려면 누르세요!



사족으로,

요즘 교회를 다니지 않는 나를 안타깝게 여기는 주위 분들이 많다. 나는 나를 걱정해 주는 그 분들이 고마우면서도 오히려 그들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정한 예수의 뜻과 말씀이 뭔지도 모른 채 맹목적으로 교회에서 하는 말만 믿고 따르는 순진(?)한 신앙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분들에게 성경과 교회의 모순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려 하면 아예 들을려고 하지도 않고 대신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감히 모르는 하나님의 큰 뜻이 있겠지요."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그냥 믿으라는 말이다. 무지 의문점을 가지려고 하지를 않는다. 답변이 궁색해지면 그들은 성경을 잘 모른다는 말로 그냥 대화를 피해 버린다. 확실한 것은, 그 어떤 의혹이나 증거들 앞에서도 -그들의 시각으로는- 그들이 옳고 내가 틀렸다라는 사실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도 예수를 믿고 따른다. 

단, 나의 믿음은 기독교가 아닌 예수교이다. 

한국 기독교에서 강요하는 맹목적인 예수 찬양이 아닌, 예수의 진짜 가르침을 믿는다는 말이다.


내가 믿는 것은 도마복음에 적혀 있고, 붓다를 비롯한 수많은 깨달은 이들의 가르침과 조금도 다르지 않으며, 선의의 외계인들이 지구인에게 전하는 메세지들[각주:16]과도 일맥상통하고, 누가복음 17:20-21에도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 바로 그 예수의 가르침이다!



주1)

여기까지 진지하게 읽으신 분들께는 본문의 내용과 관련하여 한 권의 책을 추천한다.

원래는 <예수의 별>이란 제목이었으나 요즘은 절판되었고, 대신 <9일간의 우주여행>이란 제목으로 표지만 바꾼 개정판으로 나온다. 내용은 저자가 육신을 가지고 9일동안 외계 행성을 방문한 실제 체험 수기이다. UFO 이야기? 황당한 외계인 이야기? 등.. 선입견에 구애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도서관에서 빌리든 구입을 하든 전체 내용을 꼭 읽어 보시길 권한다. 두 책이 같은 책이니 어느 제목이나 상관없다. 책은 인간의 존재 이유와 영성에 관한 내용들로 가득하지만 내가 추천하는 이유는 예수에 관련된 내용 때문이다.


주2)

1. 콘스탄틴의 일요일 휴일령 참고사진은 http://blog.daum.net/oilking7님의 블로그에서 인용하였습니다.

2. 기타 사진들은 구글 검색으로 본문의 원활한 이해를 목적으로 단순 인용하였습니다. 혹시라도 저작권에 문제가 된다면 즉시 삭제토록 하겠습니다.

All Pictures above were taken thru googling and from youtube for REFERENCE purpose ONLY (for better understanding of the article). If it offends against any legal right, I'll delete it immediately. Thank you.




이상, 주요 참고자료 :


한글판 개역성경

도마복음 이야기1 (김용옥, 통나무) 

도마복음 강의 (오쇼, 류시화 옮김, 청아출판사)

기독교 성서의 이해 (도올 김용옥, 통나무)

성혈과 성배 (마이클 베이전트/리처드 레이/헨리 링컨, 자음과 모음) 외 

이제는 제목도 기억 안나지만 많은 가르침을 준 다수의 책들 및 유튜브의 동영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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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수가 등장하여 피의 대속을 하신 순간 십일조 개념은 이미 끝났다. 또한 예수께서는 십일조를 바치라고 말씀하신 적이 결코 없다! 그런데도 한국 교회는 십일조를 안하면 마치 온전한 신앙인이 아닌 양 호도하며 아직도 십일조를 바치길 강조한다. 반드시 고쳐져야 할 부분이다. [본문으로]
  2. 마음이 가난한 자와 심령이 가난한 자는 전부 잘못된 번역이다. 예수는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다. [본문으로]
  3. 본 블로그의 "<참나>를 찾기 위한 보석같은 책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본문으로]
  4. <기독교 성서의 이해> p.162~163 [본문으로]
  5. 도올 김용옥의 <기독교성서의 이해> p.79~81 [본문으로]
  6. <기독교 성서의 이해> p.205~209 참조할 것. [본문으로]
  7. 마가복음 원문에는 부활과 제자들과의 해후 장면은 없다. 십자가 처형, 장례, 빈무덤 이야기인 16장 8절에서 끝이 난다. 그 이후는 후세에 인위적으로 조작하여 첨가해 넣은 것이다. [본문으로]
  8. 마태복음 28:19절은 이렇게 쓰여 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이는 마가복음의 저자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를 부르짖고 난 후, 마태복음이 나올 때에는 이미 하나님과 예수는 하나라는 개념이 싹트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본문으로]
  9. 그러나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하기 전까지 로마가 기독교를 박해한 기간은 통털어도 불과 5년밖에 안된다. -<기독교 성서의 이해> - p.75 [본문으로]
  10. <기독교 성서의 이해> p.78~81 참조 [본문으로]
  11. 이곳에서 "예수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다"라는 아리우스의 주장과 "예수는 신이다"라는 알렉산더의 토론이 격렬하게 벌어졌다. 결국 중재를 나선 콘스탄티누스는 알렉산더의 편을 들었고 나아가서 니케아 신경을 선언하게 된다. 이 니케아 신경은 회의를 거듭하며 논란끝에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쳐 나중에 3위1체론의 핵심이 된다. 자세한 것은 <기독교 성서의 이해> p.94~99 참조 [본문으로]
  12. <성혈과 성배> 한글판 p.498 참조. [본문으로]
  13. 여기에 대한 반박영상도 찾아보면 쉽게 나오니 객관적인 비교를 원하는 분은 같이 감상하시길 바란다. [본문으로]
  14. 말할 것도 없이 이는 영지주의 복음의 흔적이다. 놀라운 사실은, 깨달음에 이른 예수 뿐만 아니라 예수와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들 모두 인간의 영혼은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는 끝없이 윤회를 거듭한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는 흔적들이 성경 곳곳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라즈니쉬 오쇼도 도마복음 강의 p.136 이하에서 예수는 영혼의 윤회를 알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본문으로]
  15. 마17:12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셨다.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이는 누가 읽어도 예수께서 윤회를 은유나 비유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증거하는 말씀이다. 즉, 엘리야=요한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교회에서는 그렇게 해석하지 않는다. 즉, 엘리야=요한이 아니라 엘리야를 닮은(엘리야와 동급인) 요한이 왔었다고 예수께서 비유적으로 말씀하신거라고 가르치고 있다. [본문으로]
  16. 본 블로그의 <금성인과 윤회 그리고 충격적인 우주의 실상>과 <또 다른 외계행성 방문기>를 참조할 것.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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