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2019.07.03 15:08


오비디우스가 집필하고 천병희 교수님이 번역한 <변신 이야기>를 읽고 있다. 


<변신 이야기>는 그리스의 몰락 이후 로마인들이 그리스 신화에 로마식 이름을 붙이고 로마 건국신화를 적당히 합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신이 될 때까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사실상 그리스 신화의 로마판 짝퉁 대 서사시이다. 


실제로 <변신 이야기>의 과반이 넘는 분량은 그리스 신화이다. 변변한 신화도 없던 로마는 이러한 작업의 결과 풍성하고 멋진 신화를 가진 나라로 거듭나게 되었으니 로마의 입장에서 보면 어쨌거나 엄청나게 성공한 셈이다. 리포트도 원래 남의 것을 베낀 학생이 점수를 더 잘 받지 않던가! 


이러한 이유로 신들의 이름만 바뀐 채 상호 중복되는 이야기가 많을 수 밖에 없는 <그리스 신화>와 <변신 이야기>는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되는데, 후대로 갈수록 서로 뒤섞이며 전세계에 널리 퍼지게 된다. 따라서 <변신 이야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로마판 이야기가 된다. 참고로 그리스 신화의 원조는 헤시오도스가 쓴 <신들의 계보>라는 작품이다.


당대 최고의 작가로 이름을 날리던 '오비디우스'는 말년에 책 하나 잘못 써서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 미운 털이 박혀 흑해 연안에서 10년간이나 유배 생활을 했다. <변신 이야기>도 그 때의 유배 기간 중에 쓴 작품이다. 오비디우스는 불행히도 다시 자유의 몸이 되지 못하고 귀양지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그는 그 기간동안 그리스 신화에 로마옷을 입히는 위대한 업적을 이뤘으며, 그 수고의 열매는 이천 년이 넘는 오늘날까지도 온전히 살아남아 그리스 신화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고전 중의 고전으로 사랑받고 있다.


나는 이 작품을 이윤기님의 번역으로 민음사에서 출간한 문학전집으로 먼저 읽었다. 이윤기 번역본은 영어판에 일어판을 참조하여 번역한 것이고, 원전인 2인칭 운문체를 현대식 산문체로 바꾸어 독자로 하여금 읽는데 문제가 없도록 번역한 것이다.[각주:1]


태생적인 문제인 중역이라는 약점에다 원문의 훼손, 직역이 아닌 점 등이 아쉽긴 했지만, 아무튼 이윤기님의 책이 워낙 재미가 있어서 그 후에도 여러 번을 읽었고, 이번에 자타공인 원전 번역의 일인자이신 천병희님이 번역한 <변신 이야기>를 다시 집어 들었다.


천병희님의 작품은 오비디우스가 라틴어로 쓴 원래 작품을 직접 행 수까지 신경써서 맞춰가며 번역한 것이라 기대가 컸고, 무엇보다도 지나칠 정도로 자세하고 방대한 주석으로 현재 300 페이지 남짓 읽었지만 (총 700 페이지가 넘는다) 진도를 나갈수록 민음사 판과는 확실히 다른 맛을 느끼고 있다. 오비디우스의 글을 쓰는 습관까지도 알 것 같은 느낌이다. 결론적으로 쉽고 가볍게 재미있는 독서를 원한다면 이윤기 번역판을, 풍부한 해설에 정확한 번역, 원전의 분위기까지 느끼고 싶다면 천병희 번역판을 추천하고 싶다.


<그리스 로마 신화> 혹은 <변신 이야기>는 그 내용이 워낙 복잡한 구조라 읽을 때 최소한 신들의 기본 족보와 함께 이름에 관한 그리스식 호칭과 로마식 호칭에 대해서만큼은 사전 지식을 살짝 갖추면 독서가 한결 편할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주석이 자세해도 그 내용이 머리속에 암기가 되어 있지 않으면 나올 때마다 뒤적거려야 하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에는 준비없이 무작정 덤볐지만, <신들의 계보>를 옆에 두고 비슷한 이야기를 거의 열 번쯤 읽는 요즘에서야 비로소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전체적인 얼개가 조금은 그려지는 듯 하다


<그리스 로마 신화>그 자체로서도 훌륭한 작품이지만 여기에서 소재를 빌려와 파생시킨 문학 작품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전세계 인구의 2/3 이상이 그 줄거리를 안다는 <로미오와 줄리엣>도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은 독자들이라면, 셰익스피어가 <퓌라무스와 티스베>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라비안 나이트>를 서구권에 소개한 '리처드 F. 버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전 작품들은 그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그것이 더욱 소중한 이유는 시대와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소재와 영감, 교훈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고전에서 소재나 영감을 얻어 집필한 작품은 독자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아는 만큼 보일 수 밖에 없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 이후에 나온 많은 고전문학 작품들이 그렇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1. 하지만 지나친 원문의 훼손과 심지어 어떤 부분에는 역자의 상상력이 들어가 있는 부분 등으로 문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본문으로]
Posted by 소박한 독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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