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본 글은 저의 개인적인 상식을 넓히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중국 역사를 깊이 공부할 분들에겐 도움될 만한 사항들이 거의 없을 것이니 양해 바랍니다.

 

구석기, 신석기 시대를 지나며 중국에 최초로 등장한 나라는 삼황오제[각주:1] 이후 나타난 하(夏)나라[각주:2]이다 (BC 2070). 하지만 이는 중국 최초의 국가가 몽고/여진/말갈/한민족 등의 원류인 동이족이 세운 상나라임이 밝혀지자, 중국 정부가 상나라보다 앞선 시대에 전설로만 전해오던 하나라를 정사로 둔갑시켜 끼워 넣은 거짓 역사이다. 이 작업은 '동북공정'의 수법과 마찬가지로 '하상주단대공정' 및 '중화문명탐원공정'이라 불리는 역사왜곡 작업을 통해 이루어졌다. (참고 : 이덕일의 한국통사 p.43). 따라서 중국 최초의 국가는 商(=殷)나라이다.

(이리두Erlitou와 상(=은)나라의 수도 은허 위치. 중국 정부는 이리두 유적을 상나라보다 앞선 하나라의 것이라고 전세계에 선전하지만 실제는 동이족의 유산이며 상나라의 유적이다.)

 

(하나라와 상=은나라)

 

BC 1046년, 서쪽에서 나타난 주(周)족이 상을 멸하고 주(周)나라를 세웠다[각주:4]. 주는 서주와 동주로 구분한다. 서주는 수도를 호경(=서안)에, 동주는 수도를 낙읍(=낙양)에 뒀을 때로 구분한다 (BC 770년 견융의 침입으로 서안에서 낙양으로 이주[각주:5]).

(서주와 동주의 수도 및 하나라 도읍지와 상나라 수도 은허의 상대적 위치)

 

동주는 이후 주변 정벌에 힘써 중원의 지배자로 부상하는데 점점 늘어나는 땅을 통치하기 위하여 중국 최초로 봉건제도를 도입한다. 그리하여 동주의 주왕으로부터 봉해진 140여 개의 많은 제후국들이 이후 서로 치고 박고 싸운 결과 마지막까지 진(秦), 초(楚), 제(齊), 진(晉= 이후 한(韓), 위(魏), 조(趙로 나뉨), 연(燕)의 5국이 살아 남았다. 이 무렵의 시기를 춘추 시대라고 하는데 이 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제후들은 기꺼이 주 왕실의 권위를 인정했다. 하지만 초나라가 중원을 위협하며 칭왕을 하기 시작하고 BC 403년에 진(晉)이 한,위,조 3국으로 분열하면서 춘추 봉건시대는 종언을 고하고 본격적인 약육강식의 전국 시대로 들어서게 된다.  

(출처: 위키백과.) 

(진나라의 왕 '정'은 BC 230년부터 한조위초연제의 순서로 하나씩 정복, 마침내 BC 221년에 중국을 통일한다. 하지만 만리장성 이북에는 여전히 막강한 흉노족이 진을 위협하고 있다.)

 

춘추 시대에 강력했던 제나라의 제환공[각주:6], 진(晉)의 진문공, 초의 초장왕, 오(吳)의 합려[각주:7], 월(越)의 구천을 일컬어 '춘추 5패'라고 부른다.

 

국가의 흥망성쇠를 걸고 나라간 크고 작은 수많은 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던 6세기에 공자[각주:8]가 등장하여 인과 예를 내세우며 뜻있는 군주를 찾아 헤매지만 잠시 머문 노나라를 제외하고는 국가가 망하느냐 마느냐 하는 판에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한다며 어느 나라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공자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노자 또한 전쟁으로 지친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순리에 맡기고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여 도가의 창시자가 된다. 노자의 사상은 전국 말기에 등장한 장자에 의해 완성이 된다[각주:9].

(산동성의 저 지역은 거의 성현들 제조 공장이네. 공맹묵 사~려~! 불면증에 특효 무욱~!)

 

전국시대에 접어 들자 철기가 발명되고, 소를 농업에 이용하는 우경이 시작되었다. 수공업, 상업이 시작되고 나라간 교역도 이루어졌다[각주:10]. 전쟁의 와중에 병법을 다룬 손자병법이 등장한다.

 

BC 221년, 진(秦)나라가 마침내 전국 통일을 이루며 전국 시대는 끝이 난다[각주:11]. 진시황은 북방의 흉노를 경계하여 곧바로 만리장성 축조에 들어감과 동시에 주(周)가 시행했던 봉건제를 폐지하고 강력한 중앙집권 정치를 실시한다. 진시황은 법률, 문자, 화폐[각주:12], 도량형을 통일시키는 등 사회 발전에도 기여하였지만 아쉽게도 잔인한 폭정과 BC 213년에 벌어진 분서갱유라는 희대의 사상, 언론 탄압책을 실시하여 오늘날까지도 폭군의 대명사가 된다. 

 

BC 210년, 진시황이 죽자 그동안 폭정을 견디다 못한 농민들의 반란이 '진승/오광의 난'을 시작으로 잇따라 일어난다. 그리고 마침내 유방에 의해 진나라는 멸망한다 (BC 206). 이후 항우와의 패권 경쟁에서 결국 최종 승리를 거둔 유방이 한(漢)나라를 세우니 그가 바로 한고조이다 (BC 202년)[각주:13] [각주:14]

(한무제가 BC 129년부터 10년간 흉노와 전쟁을 벌인 끝에 서쪽지방까지 영역을 넓혔다.)

 

 

한고조는 주가 실시했던 봉건제를 진시황이 급격하게 폐지하는 바람에 권력이 사라진 지방 세력들이 불만을 가지고 결국 반란까지 이어져 진(秦)을 망하게 했다고 보고, 일단 지방 세력을 달래기 위해 중앙집권제와 봉건제를 절충한 군국제를 실시한다[각주:15]. 하지만 이후 왕권이 충분히 안정되자 한고조 역시 제후들을 하나씩 제거하며 왕권의 강화를 추구한다[각주:16]. 하지만 BC 195년에 한고조가 죽자 시일이 흐를수록 제후들의 힘이 다시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위기감을 느낀 한의 경제는 제후들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한 축소책을 강력하게 실시한다. 이에 오(吳), 초(楚) 등의 7개 제후국이 반기를 들었으니 이것이 '오초 7국의 난'이다 (BC 154). 반란은 3개월 만에 진압된다.

 

'오초 7국의 난'을 진압한 후 더 이상 반란을 일으킬만한 나라가 보이지 않자, 경제의 아들인 무제는 BC 141년 즉위 후 BC 87년까지 장장 54년간 한을 통치하면서 추은령[각주:17]을 만들어 제후국의 영지를 축소시키는 한편,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하는 등 황제 중심의 강력한 왕권을 확립하여 동서의 길이가 오늘날의 중국 지도와 거의 맞먹는 거대한 국가를 완성한다. 한무제는 BC 108년에는 고조선까지 멸망시키며 요동 지역에 한사군을 설치한다.

 

한사군의 위치에 관한 왜구사학 vs. 민족사학의 결투! 

(출처 : STB 상생방송 캡처화면. TV 하단의 글자는 제가 추가한 것입니다.)

 

승자는 누구일까요? ☜ 누르세요 (6분짜리 짧은 동영상. 중국이 발표한 결정적인 증거가 나옴.)

 

한편, 진시황으로 하여금 만리장성을 쌓게 만들만큼 위협적이었던 북방의 흉노족은 여전히 막강한 위협으로 한을 압박하고 있었다. BC 139년 한무제는 흉노족을 남과 서에서 동시에 협공할 목적으로 장건을 서쪽의 월지국에 사신으로 보냈으나 월지국의 거절로 장건은 임무에 실패하고 13년 만에 귀국한다. 하지만 장건이 다녀온 길을 따라 비단길로 알려진 중앙 아시아와의 무역로가 개척되었다. 인도도 장건을 통해 이 때 처음으로 중국에 알려지게 된다. BC 136년에 무제는 유교를 국교로 채택했고, BC 91년에는 사마천이 사기를 완성한다.

 

AD 8년 왕망이 한나라의 왕위를 찬탈함으로써 은 망하게 된다. 여기까지를 전한이라고 한다. 왕망은 한나라를 이름만 바꿔 신(新)나라로 부르며 15년간 통치했지만, 23년 멸망함으로써 중국 역사상 가장 단명한 왕조가 된다[각주:18]. 25년 유수(=광무제)가 다시 한나라를 건국한 후 낙양에 도읍하며 왕위에 오름으로써 후한이 등장하게 된다. 105년 채륜이 종이를 발명하고, 장형은 세계 최초로 혼천의[각주:19]를 만들었고 132년에는 또 다시 세계 최초로 지진계를 만들었다. 

 

광무제의 아들인 명제 이후 황제들은 극히 단명하여 어린 황제들이 잇달아 등극하니 외척과 환관들이 득세하기 시작한다. 견디다 못해 스스로를 청류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반환관 운동에 앞장서지만 166년과 169년 두 번에 걸친 '당고의 금[각주:20]'으로 청류들이 대거 청소되어 버린다. 황실은 환관과 외척 세력에 의해 완전히 놀아나고, 농민들은 가뭄과 홍수 등으로 배고픔에 쓰러져 가던 차에, 이들 앞에 '태평도'와 '오두미도'라 칭하는 신흥종교가 나타나 사람들을 미혹시키니 태평도는 마침내 184년 신도인 농민들을 앞세워 '황건적의 난'을 일으킨다[각주:21].

 

이후는 유명한 국지의 시대이다 (요약 생략). 

 

220년 조조의 아들 조비가 (후)한의 왕위를 빼앗으며 위나라를 세운다. 이어 221년에는 유비가 촉한을, 229년에는 손권이 오를 각각 세우니 중국은 삼국시대에 돌입하게 된다.

 

  

(출처 : EBS)

 

유비가 죽고 유선이 제위를 잇자 제갈량은 그 유명한 출사표를 바친 후, 장장 7년에 걸쳐 위를 6번이나 공격한다. 하지만 위의 명장 사마의에 의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제갈공명은 전쟁터에서 죽게 된다. 결국 263년에 촉이 먼저 멸망한다. 사마의의 손자 사마염은 진(晉=서진)나라를 세운 후 280년에 오까지 멸망시킴으로써 삼국을 통일하게 된다. 이후 316년 까지를 서진, 317~420년의 시대를 동진이라고 한다. 

 

304년부터는 북방의 유목 민족인 흉노, 선비, 저, 갈, 강이 남하하여 대륙을 지배하는 5호 16국 시대로 들어가게 된다. 돈황의 막고굴이 동진 시기에 만들어진다. 북방의 유목 민족이 남하함에 따라 남쪽으로 달아난 한족으로 인하여 강남(양자강 유역)이 크게 번성하게 된다. 한족이 사라진 화북은 5호가 16개의 나라를 세워 서로 경쟁하게 된다.

 

5호 가운데 선비족이 북위(北魏)를 세워 439년에 나머지 나라들을 전부 통합하며 화북지방을 통일한다[각주:22]이로써 5호16국 시대는 끝이 난다. 589년, 수문제 양견은 중국을 재통일하며 수나라를 세운다. 덕분에 수문제는 오늘날까지 거대 중국의 초석을 다진 1등 공신으로 인정받고 있다. 

 

220년 조비에 의해 (후)한이 망한 이후 589년 수나라의 성립까지의 기간을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대라 부르며, 북위가 화북 지방을 통일한 439년부터 수나라가 성립한 589년까지는 남북조시대라고 부른다[각주:23]. 수문제가 무력으로 대륙을 통일했다면, 아들인 수양제는 남북을 관통하는 대운하를 만들어 대륙의 실질적인 통일을 완성시켰다고 평가받는다.

 

수문제는 30만 대군으로 고구려를 공격하지만 실패하고, 수양제가 다시 612년에 113만 명의 대군으로 고구려를 재침공하지만 역시 실패한다[각주:24]. 그 후 매년 고구려를 헛되어 침략한 수양제는 결국 돌아선 민심으로 인하여 618년 자신의 친위대장에 의해 살해되고 만다.

 

618년 이연(=당고조)이 당나라를 세운다. 아들인 태종(=이세민)은 '정관의 치세'라 불리는 태평성대를 이루었지만[각주:25], 조공을 바치지 않던 고구려를 밉게 보던 중 마침내 연개소문의 반란을 응징한다는 명분으로 고구려를 침공한다. 하지만 안시성의 양만춘에게 패배했고 이후에도 다시 침공했지만 또 다시 실패한다. 태종은 재침공을 준비하던 중에 결국 수은 중독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690년 측천무후가 직접 황제가 되어 나라 이름을 대주(大周=武周)라고 칭하지만 705년 중종이 복위하며 다시 당 왕조가 복원된다. 현종 때 양귀비와 이백과 두보가 등장한다[각주:26]. '안사의 난[각주:27]'이 일어나 현종이 장안에서 서쪽 촉으로 도망가던 중 양귀비는 화난 군사들의 압력에 의해 길에서 죽고, 현종은 곧 바로 아들인 숙종에게 양위하게 된다. '안사의 난' 이후 권위가 쪼그라든 황실에선 환관들이 다시 득세하고 농민들의 생활은 더욱 비참해져 간다[각주:28]. 875년 '황소의 난'이 일어나 수 많은 농민들이 이에 가세한다. 하지만 주온의 배신으로 884년 황소가 자결하면서 난은 끝나게 된다.

 

907년 주온(=주전충)은 후량을 세움으로써 290년에 걸친 당나라는 망하고 5대 10국 시대[각주:29]를 열게 된다.

(출처 : 나무위키)

 

960년 후주의 조광윤이 송나라 건국하면서 5대10국 시대는 끝이 난다. 한편 한반도 북쪽에서 916년에 건국하여 926년 발해를 멸망시키며 만주 전역을 장악한 거란족(=요)이 만리장성을 넘어 중국으로 진출한다. 이후 요와 송은 서로 싸우다가 1004년에 전연에서 화의를 하며 송은 요가 획득한 연운 16주[각주:30]를 인정하는 외에 매년 조공까지 바치는 조건으로 전쟁을 끝내게 된다[각주:31].

 

송은 불교와 도교 대신에 유교를 숭상하여 성리학을 일으킨다[각주:32] [각주:33]. 농업 기술이 발달하고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상업이 비약적으로 발달한다[각주:34] [각주:35]화약, 나침반, 인쇄술은 송대의 3대 발명품이다. 사마광이 자치통감[각주:36]을 썼다.

 

1102년에 중국의 인구가 처음으로 1억을 돌파한다.

 

(2편으로 이어짐)

 

비고) 본문에 사용된 그림이나 도표, 사진들 중에서 출처를 밝히지 않은 것들은 전부 제가 만든 것들이며, 출처를 밝힌 것들은  본문의 원활한 이해를 위하여 구글 검색을 통하여 단순 인용한 것임을 밝힙니다. 혹시라도 저작권에 위배된다면 알려 주시는 즉시 삭제토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제가 만든 그림이나 사진등은 비상업적 용도라면 허락없이 마음껏 사용하셔도 됩니다.

 

 

  1. 삼황 : 복희(사냥), 신농(농사), 수인(불) 오제 : 황제 (중국인의 시조, 치우를 물리치고 중국을 최초로 통일함), 전욱, 제곡, 요, 순. [본문으로]
  2. 사마천의 <사기>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그 무렵 황하 유역 사람들은 해마다 거듭되는 홍수로 큰 고통을 겪었다. 태평성대라 불리는 요순시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우'라는 인물이 나타나 그 어렵다던 치수 사업을 성공적으로 매듭짓자 방, 읍, 국의 통치자들은 우를 순임금 다음 왕으로 추대했다. 이후 그 아들이 왕위를 이어 받아 하왕조가 시작되었다." [본문으로]</사기>
  3. 상나라의 수도는 은허이다. [본문으로]
  4. 전쟁에서 패한 상의 주왕은 자살했는데 그에게는 달기와의 사랑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본문으로]
  5. 서주가 견융의 침입을 받았을 때 유왕과 포사의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유왕은 결국 죽임을 당하고 주는 낙읍으로 수도를 옮겨 간신히 명맥을 유지한다. [본문으로]
  6. 관중과 포숙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본문으로]
  7. 초의 사람이었지만 아버지와 형이 평왕에게 살해되자 합려를 섬겨 초에게 복수한 오자서가 있다. [본문으로]
  8. BC 551~ BC 479 [본문으로]
  9. 노장사상이라고 한다. [본문으로]
  10. 진(秦)의 여불위가 유명하다. [본문으로]
  11. BC 403~ BC 221까지의 기간이다. 진은 한,조,위,초,연,제의 순서로 천하를 정복했다. [본문으로]
  12. 반량전 [본문으로]
  13. 수도를 장안(=오늘의 시안)으로 정함. [본문으로]
  14. 분서갱유 이후 한고조가 한나라를 세울 때까지의 혼란스런 기간동안 춘추전국시대에 저술된 책들이 많이 사라졌다. 안타까운 일이다. [본문으로]
  15. 수도 장안과 군사 요충지는 황제의 직속으로 두고 나머지는 제후국으로 두었다. [본문으로]
  16. 이 때 권력을 빼앗긴 한신이 춘추 시대부터 유래한 토사구팽 고사를 언급하며 탄식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본문으로]
  17. 제후국의 왕이 죽으면 장자 이외의 아들들에게도 땅을 나눠 주어 중앙정부 직속의 군에 속하게 하는 것. [본문으로]
  18. 노예와 토지 매매 금지로 지배층이 거세게 저항했기 때문이다. 흉노족과의 전쟁에서도 자주 패하여 지배층의 지지는 옅어졌고 전쟁으로 고통받는 농민의 봉기로 왕망은 무너진다. [본문으로]
  19. 자동 천문 관측기 [본문으로]
  20. 비환관파에 대한 탄압. [본문으로]
  21. '오두미도'와 '태평도'는 도교의 기원이 된다. [본문으로]
  22. 둔황의 석굴이 북위 시대에 만들어졌다. [본문으로]
  23. 이 시기 선비족은 한족의 문화를 많이 받아들인다. 지나친 한족화로 불만을 느낀 세력들의 반란으로 북위는 동위와 서위로 쪼개진다. 중국 영웅 문학의 하나인 <목란시>는 '뮬란'이라는 만화영화로 제작되었다. 남북조 시대때 한족과 유목 민족이 어우러져 살았던 생활상을 읽을 수 있다. [본문으로]</목란시>
  24. 청천간에서 을지문덕 장군이 살수대첩을 펼쳐 30만 명의 수나라군을 거의 전멸시킴. [본문으로]
  25. 이세민은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형과 종생을 죽였다. 그가 신하들과 나눈 문답을 기록한 '정관정요'는 제왕학의 교과서로 알려져 있다. [본문으로]
  26. 이백은 두보보다 10살이 더 많다. 둘 다 현종과 양귀비의 화려한 생활과 비참한 서민의 괴리를 괴로워 하며 동 시대의 아픔이 담긴 시를 지었다. 이백은 두보가 '한 말 술은 곧 백 편의 시'라고 했을만큼 낙천적이고 도가적 이었고, 두보는 완벽함을 추구한 유가적 경향의 시인이었다. 이백을 시선(詩仙), 두보를 시성(詩聖)으로 부르는 이유이다. [본문으로]
  27. 755년 안녹산이 20만 대군을 이끌고 당의 수도 장안으로 진격하며 뤄양에서 황제에 오른 사건을 '안녹산의 난'이라 한다. 757년 안녹산이 죽자 그 부하 사사명이 반란군을 이끈 난을 말하는데 이를 줄여서 '안사의 난'이라 한다. [본문으로]
  28. 838년부터 847년까지 일본의 엔닌 승려는 당나라를 여행하게 되는데, 당시의 생활상을 매우 사실적으로 담은 일기 형식의 <입당구법 순례행기>를 남긴다. [본문으로]</입당구법>
  29. 흔히 '당말오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5대 : 후량/후당/후진/ 후한/후주 10국 : 마초,오,오월,전촉,민,남평,남한,후촉,남당,북한(北漢) [본문으로]
  30. 북경과 대동을 중심으로 한 화북의 일부 지역. [본문으로]
  31. 이를 전연의맹(澶淵之盟)이라고 부른다. [본문으로]
  32. 성리학을 신봉하는 송의 사대부들에 의해 시(詩), 서(書), 화(畵)가 유행하였고 또한 회화가 발달했는데 특히 송대의 수묵산수화는 독보적인 경지를 자랑한다. 송대의 도자기업 또한 황금시대를 구가한다. [본문으로]
  33. 성리학은 남송의 주희에 의해 집대성된 뒤에 고려말 신진사대부들에게 전해져 조선 건국의 이념이 된다. [본문으로]
  34. 대외 무역의 획기적 증가로 남부에 광동 등의 대무역 도시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동안 서역과의 주요 무역로였던 비단길이 점점 쇠퇴하고 대양 항해를 통한 무역량이 증가함에 따라 항해에 나침반이 사용되고, 송의 화폐는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또한 세계 최초의 지폐인 교자가 발행되었으며 금융기관과, 환전소가 생겨 수표를 발행했으며 주판도 처음으로 등장했다. [본문으로]
  35. 대도시에서 상업이 발전하며 여성들의 상품화도 이루어져 창녀의 증가, 축첩제도, 상류층에서는 오대의 남당에서 시작된 전족이 유행했다. [본문으로]
  36. BC 403년 진(晉)이 한,위,조 3국으로 분열하는 시기로부터 송이 건국되는 960년까지의 역사를 편년체로 정리한 중국 통사. [본문으로]
Posted by 소박한 독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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