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한국에서 공무원이 되기 위해선 반드시 공부해야 했던 역사책이 있었다. 바로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인데 저자는 그 책에서 우리나라의 역사 분류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1. 민족주의사학 2. 유물사관 3. 실증사학 (이상 책의 머릿말에서 발췌)

 

민족주의사학은 역사를 자국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고, 유물사관은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이다. 그런데 실증사학은 뭘까?

 

실증사학은 쉽게 말해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기록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유물과 문헌과 사료 등의 실제적인 증거가 중요하다. 실증사학의 개념은 19세기부터 시작된 개념이지만 전쟁으로 인한 유물의 파손과 사료의 강탈, 도굴, 천재지변으로 인한 유물의 멸실 등으로 한계에 부딪치자 요즘의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실증사학을 포기하고 민족주의 역사관을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강단사학자들은 아직도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실증사학을 고수한다. 왜 모든 국가에서 폐기한 낡은 이론을 여전히 고집하고 있는 것일까? 한국에서 강단사학자들이 자신들을 실증사학자라고 주장하는 이유를 살펴보자.

 

국사학계의 태두로 불렸던 이병도는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와 이케우치 히로시 등에 대해서, "일본인이지만 매우 존경할 만한 인격자였고, 그 연구 방법이 실증적이고 비판적인 만큼 날카로운 점이 많았습니다 (광장, 1982년 4월호)"라고 칭송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한사군=한반도설'을 주창하고 임나일본부를 사실로 만들기 위해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확립시킨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 이병도에게는 '존경할 만한 인격자이자 '그 연구방법이 실증적이고 비판적인' 추앙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식민사관은 해방 후에도 하나뿐인 '정설', '통설'이 되었다 (이덕일 저, 우리안의 식민사관, 만권당> P.8에서 인용). 

 

위 인용문에서 보듯이 국사학계의 태두라고 불리는 이병도는, 아무런 근거없이 한사군=한반도설과 임나일본부의 한반도 남부지배설을 주장하여 중세 시대에 한반도가 이미 남북으로 일본과 중국의 식민지였다고 주장한 일본의 식민사학자들을 존경하고 그들의 연구방법을 실증적이라며 추앙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병도에게 실증사학이란 그 원래의 뜻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일본 식민사학자들의 식민사관을 미화한 단어였을 뿐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오늘날도 이병도의 식민사관을 계승하여 대를 잇는 제자들에게 그 의미는 변함이 없다. 강단사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식민사학을 미화하는 단어인 것이다.

 

먼저 식민사관이 뭔지 알아보자. 식민사관이란 일제의 조선 반도 식민지화를 정당화하고, 조선을 영구히 지배할 목적으로 조선총독부가 우리의 우수한 역사를 일본보다 열등한 역사로 조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일제는 우리의 역사를 열등하게 만들기 위하여 구체적으로 역사의 어떤 부분을 조작했을까? 먼저 신문기사 두개를 인용해 보자.

 

위의 신문기사는 조선일보의 서희건 기자가 조선일보에 쓴 글이다 (출처 : steemit.com/kr-history/@actor0801/22njq8).

 

기사에서 보듯이 일제는 식민지 시절, 우리의 민족혼을 말살하기 위하여 무려 20여만 권에 달하는 역사책을 압수하고 불태웠다. 특히 단군 관련 서적을 중점적으로 없애 우리의 상고사를 말살시켰다. 목적이 뭘까? 조선은 역사적으로 일본보다 열등한 국가이고, 따라서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것이 합당하다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일제는 위와 같은 만행을 통해 ①우리나라의 고대사를 말살한 것에 그치지 않고 ②임나일본부의 한반도 남부 지배설③한사군의 한반도설을 내세워 조선은 이미 중세 시대때 남북으로 일본과 중국의 식민지였다고 주장한다. 물론 근거는 아무 것도 없다. 일본 식민사학자들의 주장일 뿐이다. 저들은 임나일본부=가야설의 근거를 조작하기 위해 '삼국사기 초기불신론'까지 주장하며 또한 ④조선의 모든 역사는 대부분 조선 반도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반도사관). 이것이 식민사관의 실체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는 자국의 입장에서 역사서를 개괄한다. 일본이나 중국은 아예 고대사부터 근대사 전반에 걸쳐서 자국의 역사를 미화, 조작까지 하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해방후 7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식민사관이 우리나라 역사학계 전반에 걸쳐 그 뿌리를 견고히 박고 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해방 이후에는 우리나라에도 신채호와 박은식, 정인보, 안재홍 등 많은 민족주의사관을 가진 독립운동가 겸 역사가들이 있었다. 또한 유물사관을 지지하던 많은 사회경제학자들도 있었지만 한국전쟁을 겪으며 그들 대다수가 죽거나 월북 또는 납북되어 남한에서 민족주의사학과 유물사관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결국 남은 것은 조선편수사에서 이병도와 신석호가 길러낸 식민사학 추종자들 뿐이었다.

 

우리나라는 해방후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했다. 아울러 조선총독부에 협력하여 단군조선을 말살하는 등 엉터리 역사를 만들어 퍼뜨린 이병도와 그 무리들도 청산하지 못했다. 청산은 커녕, 이병도는 해방후에도 승승장구하며 이 나라의 역사학계를 지배하며 말년에는 정부에서 주는 훈장까지 받았다.

 

결국 해방이 되자마자 친일 식민사학자를 걸러내지 못했던 것이 원인인 것이다. 해방후 첫 정권인 이승만은 집권기에 친일파를 정리하지 못했고, 오늘날 사회 각계에 친일파들로 뿌리깊이 잠식되게 만든 원인제공자로 지금까지도 비판을 받고 있다. 

 

(출처 : STB 상생방송)

 

위 자료 사진에서 보듯이 조선총독부에 붙어 식민사관을 퍼뜨린 이병도는 해방후에도 식민사관을 놓지 않은 채 박정희 정권 아래에서 승승장구하며 말년에는 정부에서 훈장까지 받았다. 이병도가 해방후 40여 년간 출세가도를 달리는 동안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 식민사학자들이 양산 되었겠는가?

 

저들 중의 많은 사람들은 심지어 일본에 가서 일본 극우들의 돈으로 식민사관을 공부하고 온 사람들이다. 자금줄은 주로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와 사사카와 재단, 일본 정부의 문부성 등에서 나온다고 한다.

 

(출처 및 참고 :  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445).

(출처 및 참고 : m.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2590

(출처 및 참고 : www.insight.co.kr/news/221144) ← KBS2 TV의 호사카 유지 교수 출연.

 

물론 일본에 유학했다고 해서 모두가 다 친일파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들 중의 일부는 일본이 주는 돈으로 유학을 하는 동안에 뼈속까지 식민사관으로 무장한 일본인으로 탈바꿈되어 돌아와 강단에 선다는 것이다. 그리고 양심의 가책이나 거부감없이 학생들에게 식민사관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러니 우리나라에서 식민사학이 사라질 리가 있겠는가?

 

일본이 한국 유학생들을 극우들의 돈으로 포섭하는 이유는 당연하지만 일본 극우들의 소원이 언젠가 한국을 다시 한 번 병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식민사학자인 xxx는 일본에 유학 당시 일본인 스승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고 한다 (실명은 '우리 안의 식민사관' 책에 적혀 있다).

 

"일본의 인구는 1억 2,000만 명쯤 되는데 일본은 땅덩어리가 작아서 잘해야 7,000만 명분 밖에는 생산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5,000만 명분은 밖에서 벌어와야 한다...(중략)... 결국 아시아 쪽으로 눈을 돌릴 것이고 그 경우에 제 일의 타겟은 한국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출처 : 우리 안의 식민사관 p.80) 

 

일본의 극우들이 한국을 다시 한 번 집어삼킬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것은 아베 정권을 겪으며 이제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일본의 식민사학자들은 극우 정치가들에게 한국을 침략할 이론적, 역사적 근거를 만들어 제공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데, 그 작업의 한 갈래가 우선 한국인 유학생들을 금전적으로 포섭하여 철저한 친일파로 만드는 것이다. 

 

세종대 교수 호사카 유지는 「신친일파의 등장」이란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본측 논리를 그대로 퍼뜨리는 한국인들이 일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개중에는 일본측 자금을 받으면서 조직적으로 그런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다..... 현재 일본 내의 극우파 단체들은 지원기금제도를 만들어 한국인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도 한다. 그런 극우파 단체들의 돈을 많이 받고 사실상 일본의 논리를 한국 사회에 침투시키려는 일본 앞잡이가 된 한국인들도 있다.....(중략)... 적폐가 된 친일파 청산과 더불어 '신친일파'를 잘 식별하고 일본의 우익 세력이 한국인의 모습을 빌려 한국 자체를 침식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이하 생략 (한문화타임스. 2017.7. 8)" - (이상 출처 : 이덕일. 우리안의 식민사관. p.10)   

 

이병도로부터 시작된 식민사관을 배운 제자들은 지금은 어마어마한 숫자로 불어나 있고, 일본은 조직적으로 한국에서 온 유학생들을 포섭하여 친일파 학자들을 양산한다. 그런 점에서 일신의 영달을 위해 민족의 혼이나 다름없는 역사를 팔아먹은 이병도와 신석호는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할 자격을 충분히 갖췄다고 본다.

 

물론 식민사관을 배웠다고 해서 다 식민사학자가 되어 강단에 서는 것은 아니다. 걔중에는 학위를 받은 후 식민사학계와 인연을 끊고 민족사학자로 돌아서는 분들도 계신 것으로 알고 있고, 또한 밥벌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식민사관을 배우고 가르치긴 하지만, 속으로는 식민사관을 반대하는 분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분들의 증가 속도는 느리고,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편에 선 무리들이 세력을 불리는 속도는 가공할 정도로 빠르다.

 

해방후 70여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식민사학자들이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쌓아온 보호막은 이제 호사카 유지 교수가 지적한 바와 같이 신친일파까지 더해져 사회 전방위에 걸쳐 상상외로 거대하고 두터운 조직적 카르텔을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요즘 저들 강단사학자들은 행동에 거침이 없다. 저들은 식민사학을 사수하기 위하여 거의 발악적인 행동도 서슴없이 저지른다. 예를 들면, 식민사관과 다른 새로운 사료적 문헌이 발견되면 온갖 이유를 들어 위서로 간주하며 진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서슴없이 국뽕으로 매도한다. 저들의 매국적 만행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그 증거로 저들은 심지어 공식적으로 진서로 판명이 난 문헌도 아무런 근거없이 위서로 배척한다. 예를 들어보자.

 

<규원사화>는 조선 숙종 2년(1675) 북애노인이 편찬했는데, 왕검부터 고열가까지 47대 단군의 재위 기간과 치적 등을 기록한 역사서다. 1972년 국립중앙도서관 고서심의위원이자 당대의 저명학자들이었던 이가원, 손보기, 임창순 3인이 <규원사화>의 내용과 지질을 분석 심의한 결과 조선 중기에 쓰인 진본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남한 강단사학계는 반박논리도 제시하지 않고 위서라고 배척하고 있다. (이덕일의 한국통사 p.44에서 인용). 

 

말하자면 식민사관과 결이 다른 역사적 사료는 진서가 아니라 진서 할애비가 와도 인정 못한다는 뻔뻔한 태도인 것이다. 이유는 뻔하다. <규원사화>는 일제가 그토록 없애려고 노력했던 단군조선을 역사적 사실로 기록한 사서이기 때문이다. 저들이 실증사학이라 부르는 식민사학의 뿌리가 흔들리는 문제인 것이다. 이쯤 되면 저들이 한국인 역사학자가 맞는지 의문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닌가?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식민사학자들은 올바른 역사를 찾기 위한 민족주의사학자들의 공개토론 요구에도 일절 응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가 뭘까?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사에 관심이 없는 국민들이 공개토론을 계기로 진짜 역사 찾기에 관심을 가질까 싶어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한다.

 

저들은 <규원사화>의 예에서 보듯이 식민사관의 뿌리를 흔드는 문헌이 나타나면 증거가 있건 없건 위서로 매도한다. 그리고 뒤에서 식민사학을 옹호하는 온갖 조직과 출판물, 언론, SNS 등을 동원하여 해당 문헌이 조작된 가짜이고, 그 가짜를 진짜라고 주장하는 민족사학자들을 사기꾼으로, 민족사관을 유사역사학으로, 민족사학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국뽕으로 매도하는데 열을 올린다. 여기에 국내의 역사의식없는 보수, 진보 언론들도 편승하여 서슴없이 '국뽕'이란 단어를 쓰는 실정이다.

 

국뽕, 사이비역사학, 유사역사학, 재야학자란 단어들은 누가 처음 사용한 것일까? 에서 보듯이 호사카 유지 교수가 폭로한 신친일파들이 대중들을 호도하기 위하여 만든 용어임을 알 수 있다.

 

일본의 앞잡이가 된 신친일파들이 만든 용어들이 '국뽕', '유사역사학', '사이비역사학'이란 용어들이다. 전세계 어느 나라에 자국의 역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약중독자에 비유해 '국뽕'이라고 비하하고, 자국인의 눈으로 자국사를 보는 역사학자들을 '유사역사', '사이비역사'라고 매도하는 언론이 존재할까?" - (이상 출처 : 이덕일. 우리안의 식민사관. p.10)

 

이들은 민족주의 사관을 펼치는 학자들을 거의 예외 없이 학계에서 매장을 시킨다. 심한 경우에는 민족사학자는 강단에서 쫒겨나거나 책의 출간금지를 당하고 정부에서 주는 학술 지원비가 끊기기도 한다. (예 : www.newsfreezo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9236). 

 

".... 식민사학자들과 그 추종자들은 그동안 식민사학을 비판하는 학자들을 온갖 수단을 써서 매도하고, 공격해서 학계에서 추방하거나 매장시켜 왔다. 공개 학술 세미나에서 "단채 신채호는 네 자로 말하면 정신병자이고, 세 자로 말하면 또라이"라고 말한 한 학자는 지난 정권에서 한국사 관련 예산을 250억 원씩 집행하는 사업단 단장이었다." (이상 출처 : 이덕일, 우리 안의 식민사관 p.24-25) 

 

역사학계의 주류가 되어버린 식민사학자들 사이에서 민족주의 사학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학자 인생을 걸고 외로운 투쟁을 벌여야 할 만큼 엄청난 모험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들은 일본 식민사학자들의 역사관을 그대로 추종하여 환국과 신시, 단군과 고조선의 역사적 실재를 부인하고, 한사군의 한반도설과 임나일본부의 한반도 남부 지배설을 받아 들인다. 한반도가 이미 중세 시대때부터 중국과 일본의 식민지였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특히 대동강 유역에 낙랑군(?) 유적을 몰래 파묻은 일본의 파렴치한 행위가 만천하에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사군 한반도 위치설을 고집하는 식민사학자들의 자살골 덕분에, 중국은 동북공정에 이를 활용하여 한강 이북이 과거에 중국의 한나라 땅이었다고 전세계에 열심히 홍보를 하는 중이다. 목적은 물론 나중에 북한을 집어삼킬 때 세계 언론의 묵인을 얻기 위함이다.

 

중국이 발행한 지도. 식민사학자들의 한사군 한반도 설에 근거하여 만리장성이 평양 부근까지 들어와 있다. 중국은 미래에 북한 지역을 흡수하기 위하여 심지어 황해도까지 저 장성을 늘어놓기도 한다.

 

위 지도의 출처 및 서울신문의 기사 : 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80227020002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황해도 어딘가의 돌담을 만리장성 흔적이라고 말한 이병도의 자살골과,  그것을 추종한 강단사학자들의 자살골을 중국이 이게 왠 떡이냐 하면서 넙죽 받아먹고 만리장성이 북한까지 들어온 조작된 지도를 만든 것이다. 

 

"...한국 국가기관들의 이런 행태에 자신감을 가진 중국은 2012년 미 상원에 「중국과 북한 사이의 국경 변천에 관하여」라는 자료를 제출했다. 북한 전역이 중국사의 강역이었다는 자료다. 미 상원에서 이 문건을 한국 정부에 전하면서 한국 정부의 입장을 묻자 당시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만들던 「동북아역사지도」 제작책임자와 외교부 고위관리가 미 상원에 가서 "황해도 재령강 연안과 강원도 북부는 중국땅이었다."고 답변하고 왔다. 이것이 현재까지 한국측의 공식 견해이다." (출처 : 이덕일 저, 우리 안의 식민사관 p.11~12에서 인용)

 

다른 기관도 아닌 정부 기관에서 파견된 사람들이 미국 상원까지 출두해서 이렇게 말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는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닌가? 우리나라의 황해도 땅과 강원도 북부 땅이 언제 중국땅이 된 적이 있었던가?

 

중국은 지금 <중화문명선전공정>을 통해 한반도의 한강 이북은 과거에 중국 식민지였고, 그것은 남한의 역사학자들도 인정하는 사실이라고 '공자학원'을 통해 전세계에 홍보하고 있다. 물론 목적은 미래에 북한을 중국 땅으로 흡수하기 위해서이다. 참으로 기가 찰 일이 아닐 수 없다.

 

식민사관 추종자들은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우리나라를 다른 나라에 못 팔아먹어 안달일까?

 

아래 기사는 일제때 조작된 식민사관을 퍼뜨리며 일신의 영달에만 집착했던 이병도가 90세에 달해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겨우 반성하고 단군조선의 역사적 사실을 인정한 인터뷰 내용이다.

 

 

1986년 10월 9일 조선일보. 이병도의 특별기고문.

하지만 이병도로부터 대를 거쳐 길러져 온 식민사학자들은 이같은 스승의 고해성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단군조선을 신화 이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진서라는 증거가 차고 넘치는 환단고기는 물론이고, 이미 국립중앙도서관에서 3명의 학자들에 의해 진서라고 증명된 <규원사화>조차 아무런 근거없이 위서로 치부한다. 환단고기나 규원사화를 정사로 인정하는 순간, 신화로 치부했던 단군조선은 살아나고 일제의 식민사학의 큰 줄기는 붕괴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더 이상 회개한 이병도의 제자들이 아니다. 스승이 회개하면 제자들도 그 뜻을 받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저들은 이병도가 일제의 식민사학을 미화하느라 끌어댄 실증사학은 받들면서, 이병도의 회개는 받아들이지 않는 21세기의 새로운 이병도들인 것이다.

 

(사진출처 :  youtube '대한사랑'. 밑의 더보기에서 동영상을 볼 수 있음.)

 

북한은 일찌감치 조선총독부의 축소된 역사관을 버리고 우리나라의 본래 역사관을 복원시킨 지가 오래이다. 북한은 환단고기에 실린 4권의 사서에 대해서도 치밀한 연구를 거쳐 4권 각각을 진서로 인정하여 역사에 반영시킨 지 오래이다. 오늘날 북한이 한국을 우습게 여기고 대화 상대로 여기지 않는 것은,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는 세계적인 대국이 되었지만 역사 인식에서는 아직도 일제의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노예적 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처 : 이덕일의 한국통사).

 

오늘날 한국인들은 마치 노예적인 식민사관에 중독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식민사관과 다른 새로운 역사서가 발견되면 유행처럼 무조건 위서로 단정짓고, 진위 검증을 요구하면 신친일파들에 의해 세뇌되어 온 대중은 서슴없이 국뽕으로 매도한다. 저들의 농간에 넘어가 환단고기의 경우엔 내용도 모르는 중학생조차 환빠라고 손가락질하며 놀리는 실정이다. 한심하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일제의 역사서 말살 위기를 버텨내고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은 여러 권의 역사서들이 햇빛을 보게 되었지만 여태껏 단 하나도 제대로 정사로 인정하지 않는다. <규원사화>, <화랑세기>, <환단고기에 실린 4권의 사서들>이다.

 

환단고기의 논쟁에 대해서는 밑의 더보기 부분을 눌러서 꼼꼼하게 읽어보시길 권한다.

 

더보기

참고)

오늘날 식민사학자들이 위서로 치부하는 우리나라의 역사서들 중의 대표적인 것으로 <규원사화>,<삼성기>,<단군세기>,<북부여기>,<태백일사>,<화랑세기> 등이 있다. 이 중에서 <규원사화>와 <화랑세기>를 제외한 4권의 역사서는 계연수가 한 권으로 묶으며 <환단고기>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식민 사학자들은 <환단고기>를 위서로 규정한다. 그 이유가 뭘까?

 

  1. 연개소문 조부의 이름이 '자유'라는 것은 1923년에야 밝혀졌는데 1911년에 편찬된 환단고기에 적혀 있다는 것은 모순이다.
  2. 고조선이 BC2333년에 건립되었다고 하는데, 고대 국가의 출현은 청동기 시대가 시작된 BC 10세기 이후이으로 환단고기는 믿을 수 없다.
  3. 삼성기의 저자가 안함로, 원동중일 수가 없다.
  4. 그 밖에 지명 영고탑의 문제.
  5. 이유립이 <자유>에 발표한 글들의 문제.
  6. 삼신일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기독교의 삼위일체를 베낀 것이라는 주장
  7. 근대적인 냄새가 나는 단어들의 사용 등등...

 

총 12개에 대한 이유를 들고 있다. 그리고 이것들에 대한 반박은 인터넷 등에 이미 널리 공개되어 있는 상태다. 여기에 쓰기엔 내용이 너무 길어지니 관심있는 분들은 검색해 보시기 바란다. 다만 저들이 환단고기를 위서라고 주장하는 이유들 중에서 가장 큰 이유라고 지적한 두어 가지만 살펴보자.

 

먼저 환단고기에 쓰인 단어들에서 근대적인 냄새가 난다는 문제에 대해서 살펴보자. 밑에 인용한 자료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문화'나 '인류'는 이미 1600년 전부터 쓰인 단어이고, 금강경에는 '평등'이, 주역에는 '국가'가 전국시대의 역사서인 국어에서는 '헌법'이란 용어가 사용되었다. 문제가 된 '산업'이란 단어도 2천 수백 년 전인 중국 전국시대에 쓰여진 <한비자>의 <해로>편에서 이미 사용된 단어다. 또한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도 기록되었다.

 

강단사학자들의 무식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저들이 환단고기를 위서라고 주장하는 두 번째의 큰 이유는 삼신일체라는 단어이다. 저들은 이 단어를 두고 기독교의 삼위일체를 베꼈다고 주장한다.

 

기독교의 삼위는 성부, 성자, 성령이다. 하지만 환단고기에서 말하는 삼신일체에서의 삼신은 '천지인'을 뜻한다. 또한 우주만유가 생성되는 근원을 환단고기에서 '일신'이라 정의한다. 즉, 우주의 근원이 지상에 구현될 때 천지인으로 나타난다는 뜻이다. 기독교의 삼위일체와는 완전히 다른, 환국과 신시, 고조선 당시의 한민족 고유의 사상적, 종교적 개념인 것이다.

 

저들이 고대사회가 정치와 종교가 하나가 된 제정일치의 사회였다는 것을 몰라서 하는 주장일까?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것일까? 삼신일체란 우주와 천지인의 합일 사상으로, 홍익인간을 천명한 단군 시대의 사상인 것을 모르는 한국인이 있었던가? 

 

환단고기가 진서라는 증명은 지금까지 학자들에 의해 발표된 환단고기 진서 관련 논문 중 무려 90% 이상이 진서임을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또한 박창범 천문학 박사는 환단고기에 실린 천문 기록들을 컴퓨터로 이용하여 당시에 일어났던 사실이었음을 과학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넘치는 증거와 학자들의 진서 주장에도 강단사학자들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강단사학자들의 좁은 식견과 지식, 그리고 그 어떤 설명이나 증명도 통하지 않는 그들의 억지가 엿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저들의 진정한 목적이 뭘까?

 

참으로 궁금한 것은 저들이 환단고기를 저토록 필사적으로 부정하는 진짜 이유가 뭘까 하는 것이다. 아마도 환단고기를 인정하는 순간, 자신들이 붙들고 있는 식민사관이 그 자리에서 붕괴되기 때문일 것이다. 

 

강단사학자들과 신친일파들은 환단고기를 신봉하는 사람들을 환빠라고 비웃으며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대중들을 세뇌하고 선동한다. 특히 근대적인 냄새가 나는 단어 등의 문제를 들어 위서라고 몰아붙인 것이 주효하여, 중학생들 조차 환단고기는 가짜이고 그 책을 믿는 사람을 환빠라고 놀리는 실정이다. '환단고기=위서' 바이러스가 창궐한 것이다.

 

(출처 : www.youtube.com/watch?v=YNeVvyBJ__8동영상 시청해 보시기 바람)

 

 

설령 계연수나 이유립에 의해 환단고기가 가필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환단고기가 위서가 되는 이유는 되지 못한다. 주역과 화엄경 등의 경우처럼, 책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오랜 기간에 걸쳐 완성되기도 하고, 또 혹시 모를 전란과 외세의 사서 강탈을 피하여 여러 권 필사하여 보존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실수건 의도적이건 필사하는 사람의 시대에 맞는 단어로 치환될 수도 있다. 환단고기의 사서들은 무려 천 년에 걸쳐 쓰여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결론을 내자.

 

내 생각이지만, 강단사학자들도 마음속으로는 환단고기가 진서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본다. 다만 저들이 끝까지 환단고기를 부정하는 이유는 환단고기를 인정하는 순간, 환국과 신시, 단군조선과 고조선, 북부여의 역사가 살아나고, 이는 우리의 역사를 축소시키기 위해 그토록 애쓴 일제의 식민사학의 붕괴를 뜻하기 때문일 것이다. 쉽게 말해 자신의 자리와 밥줄이 날아가기 때문인 것이다.

 

이미 말했듯이 북한은 <규원사화>를 포함하여 <환단고기>에 들어간 4권의 역사서 전부를 치밀하게 검증한 후 정사로 인정한 지 오래이다.

 

(이상, 출처 및 참고 : 이덕일의 한국통사 및 상생출판사의 환단고기 중 p.101~102 해설 참고, 사진은 본문의 원활한 이해를 위해 구글 검색을 통한 단순 인용임을 밝힙니다.)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민족사학을 공격하는 글을 읽어보면 딱히 고개가 끄덕여지는 논리도 거의 없다. 식민사학이 반도에 국한된 조작된 사관이다 보니 근거가 없거나 허술하기 때문이다. 민족사학자들의 공격으로 궁지에 몰린 강단사학자들이 한 발 물러서서 새롭게 주장한다는 것이 기껏 임나일본부의 대사관설 혹은 교역기관설, 고조선의 평양→요동이주설 같은 근거도 없고 말도 안되는 것들이다. 전세계 어느 나라에 중세시대에 사신도 아니고 대사관이 있었던가?

 

역사가 증명하듯이 권력이건 사람이건 영원한 것은 없다. 1년 후가 될 지, 10년 후가 될 지, 100년 후가 될 지는 몰라도 이 나라에서 식민사학을 몰아내고 올바른 역사를 정립하는 날은 반드시 온다. 만에 하나 북한 정권이 무너져 중국에 흡수라도 되는 불상사가 생긴다면 또는 일본이 한국을 재침이라도 시도하는 날은, 그 날이 바로 저들에게는 심판의 날이 될 것이다.

 

학문이라는 미명아래 조작된 역사관으로 북한을 중국에 갖다 바쳤고, 일본에게 한반도 재침의 명분을 준 역적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본인이 식민사학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일본 극우들의 역사관을 빨리 벗어던지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역사학자로서 새롭고 올바르게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각설하고...

 

다행인 것은 최근들어 민족사학을 지지하는 학자와 대중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덕일의 한국통사>는 오늘날 민족주의사학의 대표주자 격인 이덕일 박사가 일제가 지운 우리나라의 진짜 역사를 중국 사료 등을 동원하여 최대한 복원시켜 새롭게 만든 한국사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는 장점과 의의는 분명하다.

 

  • 고대사부터 한일합방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개괄하면서 민족사학과 식민사학 간의 쟁점을 조목조목 짚고 있다.
  • 쟁점마다 식민사학과 민족사학이 각각 주장하는 학설과 그것들의 학문적, 사료적 근거를 자세히 밝혀 놓았다.
  • 독자는 위의 비교를 통해 쟁점마다 어느 쪽의 주장이 더 신빙성있고 합리적인지 판단할 수 있다.
  • 일본의 극우 식민사학자들의 주장을 대부분 수용하는 한국 강단사학계의 놀라운 실체를 알 수 있다.
  • 마지막으로, 중국의 사료 등에 근거하여 최대한 복원시킨 한민족의 진짜 역사를 엿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유튜브 채널 한 곳을 소개한다. 식민사관의 실체를 까발리고,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 이덕일 박사가 강연을 하는 곳이다.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등 유익하고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으니 방문해서 들어보시길 권한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gt1xVd4ZSNrGcU054TPBLQ

 

이덕일 역사 TV

역사와 이슈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합니다. 역사의 현장을 찾아 떠나는 깊이 있는 답사 해설은 더욱 생동감 있는 역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역사를 바꾸는 주인공은 바로 우리입니다. 많은 분들

www.youtube.com

 

추천하는 책들은 다음과 같다. 일독을 권한다.

중국 등의 사서를 참고하여 일제가 말살시킨 우리의 진짜 역사를 밝힌 저자의 역작이다. 강추!

 

한사군 한반도설과 삼국사기 불신론, 단군조선의 실체 부정, 임나일본부설 등의 일본의 극우들 주장을 그대로 추종하고, 식민사관을 비판하는 학자들을 매도하고 학계에서 추방하거나 매장시켜 온 사학계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식민사학자들의 매국적인 실체를 적나라하게 밝힌 책이다. 강추! 

 

식민사학이 왜곡시킨 한국사 4대 왜곡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책. 

 

북한 역사학자의 박사논문이자 북한의 대표적인 고조선 연구서. 북한은 이 논문으로 고조선의 평양 도읍설을 확실히 버렸다.

 

역자의 주해가 딸린 1400페이지의 버전을 읽기 바란다. 풍부한 해설과 함께 읽을수록 역사의 진실에 다가서는 자신을 느낄 것이다.

 

이하 제목 자체가 책의 내용을 설명해 주니 설명 생략함.

 

주) 본문의 모든 사진들은 내용의 이해를 원활히 하기 위한 목적으로 구글 이미지 검색을 통하여 인용하였습니다. 혹시라도 저작권등 문제가 있을 시에는 즉시 삭제하겠습니다. All picture above were taken thru googling and from youtube for REFERENCE purpose ONLY (for better understanding of the article). If it offends against any legal right, I'll delete it immediately. Thank you.

Posted by 소박한 독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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