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핑거스미스 소설 (열린책들)

세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를 완독했다. 나로서는 처음 읽는 레즈비언 로맨틱 스릴러물이다. 열린책들의 소설들이 거의 그렇지만 촘촘한 작은 활자에 800페이지가 넘는 두께라 밤에 침대에 누워 스탠드 불 밑에서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인공눈물을 몇 번이나 넣어야 했다.

 

소설은 수전의 1인칭 시점으로 시작되는데 도입부는 흥미로웠다. 중세를 다룬 영미 문학이 거의 그렇듯이 장면이 바뀔 때마다 나타나는 장황한 배경 설명과 함께 두 여인의 밀당이 살짝 지루하다고 느껴질 즈음, 전혀 예상하지 못한 거대한 반전이 등장한다. 여기서부터 독서에 진지하게 몰입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야기는 처음으로 돌아가 상대방의 시선에서 다시 시작되는데... 그동안 무심히 넘겼던 앞 페이지의 많은 부분들이 사실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음이 드러난다. 흥미가 배가됨. 그리고 결말을 향해 치달으면서 또다시 거대한 반전들이 두어 개 더 몰아친다. 클라이막스와 결말 부분인 마지막 300페이지 가량은 하루 만에 다 읽었다. 로맨틱 레즈비언 소설에 왜 스릴러라는 수식어가 붙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부분.

 

작가의 다른 작품 <게스트>를 읽었다. 역시 두 유부녀 사이에서 벌어지는 레즈비언 스릴러물이다. 책의 반 이상쯤 읽고나서야 드디어 사건이 벌어지고 제법 스릴러물다운 흥미진진한 전개가 벌어진다. 바꿔 말하면 책의 초반부 반 이상이 지겨웠다는 뜻. 이 작가의 책을 읽으며 재미를 붙이려면 제법 인내심이 필요함을 느낀다. 살인이나 긴박한 첩보물같은 정통 스릴러물에 길이 들어버린 나의 독서취향과는 맞지않는 듯.

 

작가는 중세 시대 때 레즈비언들의 실태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학위를 따기 위해 중세 시대때 지어진 레즈비언 소설들을 거의 다 읽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지금은 학구적인 연구와 집필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고 한다. 상기의 두 권을 읽어본 결과 작가는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것 같다. 소설에서 일본풍의 장치가 한 가지 이상씩은 꼭 등장하기 때문이다. 찰스 디킨스의 팬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번역에 대해 : 열린책들의 <핑거스미스>는 단문들이 많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문장에서 문장으로 넘어가는 부분이 살짝 어색하다. 원작의 문장도 그런지 모르겠으나 2부에서는 갑자기 시제가 줄곧 현재형으로 바뀌어 소설 속 감정이입에 종종 방해를 받는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무난한 번역이라 생각한다. 자음과모음에서 나온 <게스트>는 번역에서 딱히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함.

 

2. 핑거스미스 3부작 드라마

소설을 읽고 BBC에서 만든 3부작 드라마를 시청했다. 드라마는 원작의 큰 줄거리를 매우 빠른 속도로 충실하게 재현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메인 스토리에만 치중하다 보니 조연들의 정확한 역할 묘사가 부족하다 (예를 들어 소설에서 모드 삼촌은 겉으로 고상한 척하는 천박한 호색한이다. 하지만 드라마에서의 모드 삼촌은 숙녀처럼 차려입은 여주인공이 비서 역할을 하는 고상한 장서 애호가처럼 보인다). 

 

책을 읽고 다시 한번 작품을 영상으로 보고 싶은 사람이나, 소설 속 시대적 배경과 이야기의 실제 무대장치 등을 감상하고 싶은 사람 혹은 책을 읽을 시간은 없지만 큰 줄거리로 간단하게 작품을 맛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만 추천.

 

3. 영화 <아가씨>

마지막으로 핑거스미스를 원작으로 한 영화 <아가씨>를 감상했다. 흔히 박찬욱 감독을 천재라고 칭한다. 그리고 영화 <아가씨>를 보고 나면 그 칭호에 반박하기가 정말 힘들 것이다. 왜냐 하면, 아가씨는 핑거스미스이지만 핑거스미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원작에서 주제와 모티브만 따온 완벽하게 다른 두 작품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작의 스토리와 분위기를 더욱 완벽하게 살린 진짜 핑거스미스이다. 이는 핑거스미스의 본국인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가씨가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사실에서도 입증된다.

 

원작의 작가인 세라 워터스는 전혀 다른 배경과 결말로 자신의 작품을 완벽하게 재현한 이 영화를 세 번이나 보았다고 한다. 특히 숙희가 히데코의 이빨을 갈아주는 장면에서는 김민희의 표정 연기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소설의 단점을 완벽하게 보완했다는 의미이다. 개인적으로 BBC판 3부작 드라마와는 비교불가급이라 생각한다.

 

영화를 보고 나서 다음의 링크를 방문해 보시기 바란다. <아가씨>의 촬영기법, 제작 방법, 포스터 제작 비화, 화면 속 무대 장치에 대한 설명, 영화 속 CG 등 아가씨에 관한 재미있는 뒷 이야기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7HPhsJ6Y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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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박한 독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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