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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관한 이야기

여러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을 읽고 느끼는 개인적인 소감 (2022.05)

by 소박한 독서가 2022. 5. 14.

 

참고) 2020년에 <출판사별 세계문학전집에 대한 간단 소감>을 썼다. 본 글은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의 속편격?ㅎㅎ. 참고하실 분은 ↑링크를 누르시기 바랍니다.

 

 

얼마 전에 보유하고 있던 200권 남짓한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을 다른 주인에게 입양을 보냈다. 방에 들어서면 언제나 제일 먼저 눈에 띄던 색색깔의 줄무늬 책들을 막상 처분하고 나니 의외로 시원섭섭하다. 민음사의 책을 읽으며 항상 뭔가 아쉬웠던 부분을 더 이상 안 느껴도 된다는 시원함과 아직 못읽은 책들에 대한 아쉬움에서 오는 섭섭함...

 

세계문학전집이라고 그 안에 속한 모든 작품들이 다 내게 감동을 줄 수는 없다. 사람마다 각자의 독서 취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거기다 거대 출판사답게 업계 최다의 목록을 자랑하는 만큼 그 안에는 나와 도저히 궁합이 안맞아 몇 번의 시도를 했지만 끝내 읽기를 포기한 작품들도 분명히 있었다. 또한 거대 출판사답지 않게 잊을 만하면 가끔 나타나는 이상한 번역은 옥의 티가 아닐 수 없다. 전체적으로 민음사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안타까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세계문학전집은 음식점과 마찬가지로 9번 잘하다가 한 번 실망하면 다시는 찾지 않게 된다. 내가 민음사의 책들을 처분해 버린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보낸 책들 중에는 미련이 남는 작품들도 분명히 많이 있다.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처음부터 작품을 고를 때 독자들의 평을 잘 읽어보고 검증이 된 작품들만 가려내어 읽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신뢰하는 을유세계문학이 이제는 민음사 대신 나의 서가에 차곡차곡 권수를 늘려가고 있다. 앞에서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 이번에는 국내초역이 된 작품들 중에서 독자들의 평이 좋은 책들과, 이미 다른 출판사의 책으로 읽었더라도 감동을 받았던 작품들 중에서 번역가가 다른 책들을 한 번에 한두 권씩 온라인 서점에서 구입한다.

이렇게 읽으니 다양한 세계의 문학 작품들을 접할 수 있어서 좋고, 나랑 궁합이 맞지 않는 작품들을 피할 수 있어서 좋고, 작품 선정에도 거의 실패가 없어서 좋다. 민음사 책들에서 가끔 보이던 번역에 대한 물음표 또한 아직까지는 전혀 없다. 여태까지 30여 권 읽었지만 번역으로 찜찜한 느낌을 가져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번역이 잘된 문학 작품에서 느끼는 감동이 큰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책을 다 읽으면 나타나는 작품해설과 작가연보도 독서의 여운에 깊이를 더해주니 더 바랄 것이 없을 정도다.

200여 권에 달하는 책들이 빠지고 없으니 훨씬 넓어진 책장에 다 읽고난 녹색의 양장본이 한 권 한 권 들어차는 것을 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원할 때마다 이 책들을 다시 읽으며 그 감동을 되새김할 생각을 하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한 마디로 독서에 대한 만족도는 민음사보다도 훨씬 크다. 출판사에 따라서 번역의 느낌도 달라지는 것일까... 을유의 책들은 신기하게도 을유 특유의 문체가 있다.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하긴 힘들지만 다 읽고나면 마치 중세의 성 안에 차려진 고상한 카페에서 차 한잔 마시고 나온 듯한 기분? 앞으로도 을유의 목록만큼은 처분하지 않고 두고두고 보존할 생각이다.

 

문학동네 역시 틈틈이 애독하는 전집이다. 책장을 문학전집으로만 채우긴 턱없이 좁은데다 얼마 안되는 나의 용돈을 책구입에만 투자할 수 없어서, 아쉽지만 문학동네의 책들은 주로 도서관에서 빌려본다. 최근에 읽은 목록으로는 <아르세니예프의 인생>과 <맘브루>가 있다.

문학동네의 목록은 국내초역이거나 다른 곳에서 절판되어 문학동네에서만 읽을 수 있는 작품의 비율이 무려 50%가 넘는다. 이런 점에서 문학동네의 목록들은 아주 흥미롭다.

불만이 있다면 온라인 서점에서 양장본은 언제나 품절 아니면 절판이고 무선본만 살 수 있다는 점이다. 짐작컨데 출간과 동시에 인기가 많은 양장본으로 일단 일정 부분의 제작비를 회수한 후 절판시키고, 정작 본격적인 이윤은 상대적으로 제작이 쉬운 보급판에서 남기는 마케팅 기법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양장본 구입의 어려움은 내가 을유를 나의 책장에 꽂는 반면에 문학동네는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열린책들의 세계문학은 2년 전쯤인가 모 온라인 사이트에서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했던 e-북 버전(100권)을 태블릿으로 읽고 있다. 다만 도스토옙스키 등 내가 가장 좋아하는 러시아 문학은 신뢰하는 번역가의 책이라면 출판사를 따지지 않고 실물을 구입한다. 두고두고 손때를 묻히고 싶기 때문이다. 그 외의 열린책들은 주로 이북으로 만족하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신간이 나오지 않는 펭귄클래식의 책들도 열린책들과 마찬가지로 2년 전쯤에 모 온라인 사이트에서 90% 할인?인가로 구입했던 130권의 e-북 버전으로 읽는다. 얼마전에는 <1984>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읽었다. 두 작품 다 청소년 시절에 읽고 두 번째 읽는 셈이다. 

펭귄클래식은 앞에 위치한 작품해설이 때로는 스포일러로 작용하여 영 마음에 안든다. 작품해설이라고 써놓고 대놓고 줄거리와 하이라이트 스포일러를 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긴 해설이니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펭귄을 읽을 때는 무조건 본문부터 돌입한다. 해설은 책을 다 읽은 후 비로소 펼친다. 그렇게 하니 스포일러도 피하고 이해도 훨씬 잘된다. 책이 잘 팔리지 않는지 더 이상 새로운 신간들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발간하는 대산 세계문학총서는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세계명작들을 발굴하여 소개한다는 취지와 그에 어울리는 최고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품절, 절판본이 너무 잦아 주로 도서관을 이용한다. <오블로모프><위험한 관계><남과 북><붉은 수수밭><불의 산>등은 꼭 읽어 보시길 추천한다.

 

수 년간 민음사/을유/펭귄클래식/문학동네/열린책들/문학과지성사 등의 세계문학전집들을 읽어본 경험상, 역시 나의 개인적인 원픽은 여전히 을유다. 그 다음은 문학동네다. 솔직히 말하면 두 출판사의 전집은 공히 국내 초역의 목록들이 꾸준히 출간되기 때문에 똑같이 탐이 난다. 하지만 양장본을 구하기 불가능한 문학동네와 달리 을유는 양장본으로만 책을 내는데다 번역의 신뢰성과 착한 가격까지 더해져 나의 원픽이 되었다. 

을유는 거대 출판사도 아니고 마케팅 비용이 많은 회사도 아니지만 (나의 짐작일 뿐이다) 오로지 실력으로만 승부하여 목록의 다양성과 번역의 수준, 제본, 가격에서 거대출판사에 오히려 앞서는 뛰어난 세계문학전집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오너의 사명감이 없으면 이렇게 하기 힘들다. 이런 출판사는 개인적으로도 응원하고 싶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을유의 작품들 수준으로 봤을 때 출판사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신간을 내놓는다면 언젠가는 문학동네와 함께 세계문학전집의 TOP 자리를 다투지 않을까 싶다.

 

을유와 문학동네의 완독을 위하여... 스스로에게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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